본업은 집사
나는 고양이와 살고 있다. 이 얼마나 설레는 문장인가. 어렸을 적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현재도 우리 집 강아지 토토는 본가에서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소위 개파로 강아지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사는 것이 꿈이 었는데 그곳에서 꼭 리트리버와 같은 대형견과 함께 살아가는 낭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엄마와 작은 다툼이 있었기에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원래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걷고 싶어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가끔 강아지 산책을 위해 다니는 길이지만 퇴근을 하고 혼자선 처음 걷는 그 길을 걷다 주택가의 열무 밭 옆 도랑에서 고양이를 발견하였다. 떨어져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모양에 엄마는 고양이를 꺼내 주곤 다시 길을 가는데 밭 옆의 주택가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던 탓인지 신경질 적으로 고양이를 바가지로 들어 다시 도랑에 던져 버리는 모습을 엄마는 보곤 잠시 기다렸고, 결국 새끼 고양이를 구조하기로 하셨다. 사진으로 본 새끼 고양이는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는데 어미와 떨어진 지 꽤 오래된 모양인지 많이 더럽고 털이 빠진 부분에 피부병도 있었다. 난 그때 이미 자취를 하고 있었고 직장 일로 바빴고, 일주일 뒤 추석에 난 본가로 가 새끼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삐적 말른 새끼 고양이에게 젖병에 고양이 우유를 담아 먹였다. 내 손톱보다 작은 두 앞 발로 젖병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우유를 빨아먹는 모습이 기특하고 불쌍해 마음이 찡 해졌다. 너무 아가인데 많은 고생을 한 고양이는 이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고, 마침 나와 동생이 함께 동거를 시작하며 이사를 가게 되어 한 달 뒤 나와 고양이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제리, 치즈 고양이이다. 톰과 제리의 제리를 따서 지어주었다. 제리처럼 영리하게 살아가라고, 더 이상 버림받지도 말고 나쁜 사람들에게 치이지 말라고. 이제 1년 10개월이 된 우리 제리는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렇게 영리하지도 꾀가 많지도 않다. 오히려 얌전하고 순한 쫄보 고양이가 되었다. 공주님, 공주님 하고 불렀더니 진짜 공주님이 되어 버린 걸까.
매일 인터넷을 보며 공부했다. 이런 상황엔 이렇게, 이런 행동엔 이런 반응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고양이 성격 파악하기를 하며 고양이 세계에 발을 딛게 되었다. 하지만 글로 열심히 익혀도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을 만나고 읽어 본 적 없는 제리의 반응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맘을 몰라 주는 제리가 밉다 하다가 화도 냈다가 아차 싶어 다시 사과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나를 제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하려나, 애초에 나를 인간으로 인식하려나, 그냥 우리 집 큰 고양이는 이상하다, 정도로 생각하려나. 제리를 만나 함께 살며 내가 중심이던 나의 생활이 제리가 중심으로 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고양이에게 맞추고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30살이 되어 빠진 고양이의 매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고양이 세계로 빠져버렸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2년 정도 고양이와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고양이에게 배운 건지, 제리에게 배운 건지 조금 구분은 안 가지만 아마 내가 가르쳐 준 것보다 내가 배운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난 조금 완벽주의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격만 그러하니 쉽게 예민해지고 까칠했다. 사소한 것도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틀어지면 굉장히 피로와 걱정, 스트레스를 받았다. 직장을 다니며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로 이직을 한 직후였고, 걱정과 불안이 몸 안에 배어있었다. 그런 찰나에 우리 제리를 만나 나의 뾰족한 부분이 조금 뭉툭하게 변했다. 밥을 먹는 테이블 위에 쓱 올라와 자리 잡고 식빵을 구울 때면 먹던 밥을 멈추고 이마를 만져주거나, 아침에 눈을 뜨면 창가에 앉아 밖을 보는 제리를 보며 나도 옆에 앉아 창 밖을 구경하였다. 공부해야 할 것이 넘쳐 신경질적으로 책을 펴 보다가도 놀아 달라며 책 위에 앉아 큰 눈으로 나를 보면 결국 펜을 내려놓고 뽀뽀 10번쯤 하고 내가 그렇게 좋냐며 배시시 웃게 만든다. 사람 먹는 음식은 먹지도 않아 강아지와 다르게 크게 걱정은 없는데 항상 냄새를 맡고 싶어 하고 괜히 솜뭉치로 툭 쳐보는 귀여운 행동에 항상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지켜보게 된다. 내가 제리로부터 배운 가장 큰 것은 어떤 상황을 대하는 마음의 여유로움이다. 항상 각을 재며 행동하는 것이 아닌 부드럽게 스며들어가듯 느긋한 행동과 풀어진 마음을 가지는 것, 아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 제리는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에게 와 준 최고의 선물이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얼마 전 일하는 가게 옆에서 어미에게 버려진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하게 되었다. 병원에 데려가 접수를 하는데 이름 적는 란에 잠시 고민을 했다. 이름이 없으면 길고양이라고 적어도 된다는 말에 조금 마음이 아팠다. 마침 미융! 미융! 하고 우는 고양이에게 미우라는 이름을 주었다. 울음소리지만 크게 자기 이름을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미우는 나의 두 번째 고양이가, 제리의 동생이, 우리 집 두 번째 공주님이 되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미우와 제리는 사이가 굉장히 좋은 편은 아니다. 서로 그루밍을 해주는 것은 보지도 못했고 제리가 딱 한 번 해주는 것을 보았다.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며 싸우는 건가 싶어 걱정이 되어 이리저리 찾아보곤 둘이 노는 것이라는 판정이 나서야 난 비로소 안심하고 둘의 투닥 거림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돌보아야 할 고양이가 한 마리에서 두 마리가 된 집사 생활은 이전보다 3배는 바쁘고 일이 많아졌다. 걱정도 많아졌고 피로도 늘었는데 그만큼 웃음이 늘고 마음속에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일을 마치면 집으로 간다. 일의 스트레스가 과했을 땐 집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 사는 집이 싫을 때도 있었고 그 작은 방에서 한껏 우울해져 혼자 울다가 맥주를 마시다 잠들 때도 있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론 빨리 집으로 갈 생각뿐이다. 나를 기다리는,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 주고 장난감을 흔들어 줄 집사를 기다리는 고양이가 있으니깐. 나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 좋은 일을 겪더라도 현관을 열면 문 앞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이 아이들이 있어 하루의 시작과 끝이 비참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바닥을 치던 자존감이 서서히 회복을 했다.
걱정이라면 난 이렇게 행복한데 우리 고양이들도 이렇게 행복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는다는 점. 가끔 사람 말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제리와 미우가 나에게 말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 이야기의 내용이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닌 불만 사항과 그의 개선 사항이면 조금 씁쓸할지도 모르겠다. 고양이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아직도 마음 둘 곳을 못 찾고 방황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하루는 정말이지 바쁘고 정신이 없지만 이토록 행복하게 해 주어 항상 고맙다. 이젠 내가 묘생을 갓생으로 만들어 줄 차례이다. 얘들아, 앞으로도 너희들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