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갔다. 7년 만의 해외여행, 8년 만의 삿포로였다. 11월 여행을 계획하고 10월 말,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오랜만의 여행 준비는 설렘보단 어색함이었다. 아무래도 처음은 아니니깐,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 일수도 있겠다. 비행기 표 예매와 호텔 예약, 이 두 가지만 하고 나면 여행의 큰 준비는 마친 격이다. 마침 하는 일이 너무 바빠져 신경도 못 쓰고 있었는데 덜컥 출국 날짜가 다가왔다. 이틀 전에 캐리어를 구매하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동생이 고양이들을 돌보기로 했기에 집 청소를 하고 사료를 소분하고 침구 정리까지 했다. 오랜만의 여행의 설렘보다 비우게 될 집 걱정이 더 컸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집을 3일이나 비우는 건 처음이었기에 괜히 여행을 가는 건가 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도착한 김해공항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살짝 긴장했으나 별문제 없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내가 여행을 오지 않는 사이 되게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스마트공항 바이오 등록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비짓 재팬이라는 출입국 카드 대신 작성하는 것도 생겨났다. 온라인 티켓으로 표를 받을 필요도 없어졌다. 2008년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갔다. 학교에서 여름방학 체험으로 떠났는데 그땐 배를 타고 이동했다. 스마트폰도 없어서 친구들과 네이버 블로그에서 맛집 정보를 찾아 지도를 인쇄해 가서 길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이십 년도 아직 안 지났는데 할머니가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1시간 50분이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한다고 한다. 체감은 기차보다 느린데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일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걸까. 비행기 안은 만석인 듯 보였다. 모두들 나와 함께 삿포로에 간다. 옆 자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온 것 같다. 저 멀리 아기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 또 마주칠지 궁금하다. 다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지, 당신들은 이 여행이 설레는지, 아니면 나처럼 어색한지.
2시간 정도의 비행이 끝나고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순서를 기다렸다 뒤도 안 돌아보고 캐리어를 끌어 나왔다. 공항에 내리면 조금은 실감이 날까 싶었다. 나 오랜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을 왔어, 꿈꾸던 순간이야, 하며 낯선 땅의 공기를 가득 느끼고 싶었다. 군데군데 적힌 일본어 광고 표지판이 보이고 안내문이 보였고 정신없이 지나 현금 인출기를 찾았다. 환전을 하나도 해 오지 않았기에 바로 현금을 뽑아 공항 리무진을 탈 예정이었다. 리무진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 조바심이 났다. 예약한 호텔은 나카지마 공원 근처의 호텔인데 근처로 가는 리무진은 하루에 몇 대가 없었다.
운이 좋으면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호텔로 가는 다른 방법은 찾아보지 않았다. 나는 무턱대로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난 꽤나 낙천적이고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실패했다. 현금 인출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한참을 기다려 시도했을 때, 화면에는 카드 사용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3번 정도 시도 후엔 뒤의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어야 했다. 리무진은 오분 뒤에 출발한다. 그 사실보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여행을 한 푼도 없이 할 수는 없으니깐. 다시 줄을 서 기다리고 다시 시도했으나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보며 시도한 노력과는 상관없이 또 실패했다. 빨리 공항을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 공기는 너무 탁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몇몇은 나와 같이 돈을 찾는 것에 실패하고 영수증 더미를 들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다시 줄 서기를 포기하고 JR 열차를 타러 갔다. 카드 결제가 된다는 블로그 글을 보았기에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케리어를 끌고 다시 출발했다. 기념품 가게가 가득한 곳이 나타났다. 달콤한 디저트 냄새가 코를 찌르자 배도 고픈데 속이 울렁거렸다. JR이라고 쓰인 표지판만 보며 속이 빈 캐리어를 끌고 빠르게 걸었다. 얼른 나를 밖으로 데려다줘!
다행히 JR은 카드 결제가 가능했고, 내 카드는 결제가 되었다. 화면에 결제 중에서 결제 완료로 넘어가는 순간이 얼마나 떨리던지. 이게 안되면 돈을 어디서 빌려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무사히 호텔은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열차가 와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고, 열차는 오래된 느낌이 나는, 하지만 단정한 열차였다. 빈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26살 첫 회사를 퇴사하고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 삿포로였다. 7월의 한 여름, 푸릇푸릇한 삿포로에서 4박을 보냈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카페를 가는, 모든 것이 어색한 첫 여행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혼자서 여행을 즐겨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어색하고 낯선 여행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34살의 지금 다시 혼자서 삿포로로 가고 있다. 삿포로와 삿포로 사이에 8년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겨우 시간을 내서 온 7년 만의 여행이었다. 되게 어렵게 왔는데,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 쉽게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어렵고 뭐가 그렇게 힘들었었나.
창 밖에 하얀 뭔가가 내렸다. 눈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눈이었지만 눈이었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새하얀 눈을 내려주었다. 일기예보에 일시적인 눈 모양이 있긴 했으나 믿지 않았다. 내가 사는 지역은 한 겨울에 눈이 올까 말까 한 지역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냥 좀 추우려나, 하는 생각만 했었는데, 삿포로는 11월에도 눈이 오는 곳이었다. 송이송이 하얀 눈송이들이 내렸다. 점점 커지고 빠르게 내렸다. 열차가 빨라서 눈이 빠르게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창 밖의 세상이 조금씩 하얗게 변해갔다.
40분 정도를 달려 삿포로 역에 도착했다. 우선은 돈이다! 공항의 ATM 기계가 문제였으리라 믿으며 아까 실패한 현금 인출을 다시 하기 위해 ATM을 찾아 지상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더 커진 눈송이가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니, 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신기하게 하늘을 보고 있었고, 눈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나도 여행자로서 당연히 사진 먼저 찍었다. 눈이 많이 온다는 것을 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 셀카를 찍었는데 참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니, 이렇게나 신이 났다고? 좀 전까지만 해도 어색함에 굳어 있던, 침울해하던 모습은 없어졌다. 눈이 오는 순간 내 마음은 설렘과 들뜸으로 바뀌었다. 단단히 굳은 마음에 차가운 눈꽃이 내렸다. 내 얼굴에 눈이 앉았다. 그 부드러운 차가움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 같이 들뜬 여행자들과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현지인들. 그 두 모습이 너무 차이가 나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웠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풍경도 그 속의 우리들도.
두근거리지 않는 말라버린 마음에 낯선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 받았다. 이런 기분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오랜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