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행 1일

로손 편의점

by Nari



내리는 눈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밀려오는 배고픔에 정신이 들었다. 다시 ATM을 찾기 위해 서둘렀다. 다행히 공항에서 보다 사람이 적어 기다릴 필요 없이 돈을 찾았다. 물론 한 번에 되지 않고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고, 결국은 성공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이제는 싹 다 사라져 홀가분해졌다. 역시 돈을 가지면 마음이 든든하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2시, 마음은 든든해도 몸과 정신은 피곤하고 지쳤었다. 바로 밥을 먹으러 갈까 했으나 브레이크 타임에 걸릴 것 같아서 먼저 호텔 체크인을 먼저 하기로 했다.

여전히 눈은 거침없이 내리고 있었기에 내가 지하철을 타고 호텔로 가는 동안에도 펑펑 내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부풀어져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가면 바로 목적지인 나카지마 공원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조금 걸어가면 3일 동안 내가 묵을 호텔이 나온다. 그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나카지마 공원 근처에 있고, 호텔에서 보는 공원 뷰가 멋있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공원 산책을 하겠다는 작은 계획이 있었다.

나는 공원을 좋아하는데, 평상시에도 늘 공원을 찾아가곤 한다. 그게 여행지에서도 변함이 없다. 집에 가는 길에 슬쩍 공원에 들르거나 하루의 시작을 공원 산책으로 하는 등 틈틈이 공원을 걷고자 한다. 그래서 숙소의 위치가 중요했다. 마침 삿포로엔 커다란 공원이 있었고, 그 주변으론 몇몇 호텔들이 있었다. 호텔 예약 사이트로 검색해 좋은 금액대의 객실을 예약할 수 있었다. 공원뷰의 객실로 달라는 요청은 쑥스러워서 따로 하지 못했지만, 오랜만의 여행이라 너무 기대된다는 한 줄의 문구를 보냈다. 알아차려주실까, 나의 이 마음을.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자 눈이 살짝 멈추었다. 역을 오르자 길 건너에 로손 편의점이 있었다. 일단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챙겨서 호텔로 갈 생각이었다. 일본 편의점은 간단 식사류나 빵, 디저트가 너무나도 잘 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편의점에서 뭔가를 사 먹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문제지 전혀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식당이 별로 없는 지역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편의점만 있으면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 편의점에서 나폴리탄을 사 먹고 얼마나 행복했던지..


로손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처음 들어가자마자 무인양품의 노트가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무인양품이 딱 2개가 있는데, 두 곳 모두 거리가 꽤 있어서 필요할 때 바로 살 수가 없다. 감탄을 하며 시선을 돌리자 맥주가 가득한 음료 코너가 나타났다.

삿포로 블랙라벨은 어쩐지 시선의 가장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좋아하는 일본 맥주가 가득했다. 고작 이백 엔대라니. 매일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부풀어 올랐다. 맛있는 생맥주로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밥집을 못 가게 되었기에 캔맥주를 하나 집었다. 눈 내리는 아름다운 삿포로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건 엄청나게 확실한 행복함이 느껴졌다.

그러고 뒤를 돌아 빵과 디저트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푸딩을 좋아해서 집으려다 뭔가 새로 나온 것처럼 보이는 치즈케이크를 집었다. 늘 한정 판매를 자주 하는 일본 답게 기간 한정이라 적힌 디저트들이 많았고 나는 한정이 약하다. 특별한 하루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간 한정 디저트를 먹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에 일본 편의점은 너무 쉽게 행복해지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도시락 코너에 왔다. 좋아하는 카츠동, 카레, 파스타 등 여러 도시락들이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음이 부유해졌다. 지금 시간대는 빈 매대가 없이 맛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나같이 선택을 잘못하는 사람한테는 힘든 시간이다. 따뜻한 것이 너무 먹고 싶어서 결국 고른 것은 감자그라탕이었다. 홋카이도는 구황작물도 맛있었던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치즈가 녹아있는 그라탕은 아마 지금의 내게 최고의 선택이 될 것 같았다.

계산할 때 점원의 질문을 잘 들어야 한다. 아타타메어쩌고가 나오길 기다린다. 데워드릴까요?라고 묻는 질문으로 일본은 전자레인지를 손님이 직접 사용하지 않고 점원이 데워주신다. 처음 일본 여행 때는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이죠부데스만 답하다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다. 그라탕은 반드시 데워야 하니깐 주의 깊게 듣다 오네가이시마스로 답한다. 성공. 이로서 따뜻한 그라탕과 차가운 맥주를 먹을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처음 질문은 대부분 포인토카도어쩌고 이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눈이 더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송이가 꽤 컸다. 대낮에 이렇게나 눈이 내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의 맞은편에 있는 나카지마 공원의 큰 나무들은 눈으로 뒤덮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눈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의 여행의 시작인 것처럼 영화의 도입부가 잘 어울리리라. 어쩜 이 도시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며 새하얗게 변해가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채로 한참을 멍하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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