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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Nov 11. 2022

모과를 닮은 그녀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우리 가게에 종종 오는 10대 소녀 손님이 있다. 평일 낮 시간에 가게에 와서 가져온 만화책을 보고 차를 마시며 창 밖을 보기도 한다. 순하게 생긴 외향 덕에 가끔 손님을 쳐다보게 되면 그 순간과 공간이 같이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처음엔 평일 낮 시간에 와서 20대 초반인 줄 알았다. 카드로 결제를 하면 가끔 어머니로 예상되시는 분이 전화가 걸려와 ‘성인 딸에게 관심이 좀 많으시네..’ 하고 멋대로 생각해 버린 적이 있다. 그러다 모녀가 함께 가게를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날도 종종 생겼고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이 아이가 18살인 것을 알려 주셔 그제야 귀여운 소녀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녀 손님은 조금 빠르게 고등학교와 이별하고 본인의 꿈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자신과 맞지 않은 무리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스스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런 선택을 한 소녀도 또 그것을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도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녀 손님이 볼 수 있게 가지고 있던 만화책이나 에세이를 가게에 가져다 두고 추천을 해 주었다. 조금씩 읽는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한 달 전 가게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한 달 정도 오는 기간 동안 인사와 간단 안부 외엔 우리 사이에 큰 대화가 없었는데, 책을 보고 재밌고 좋다며 먼저 소감을 말해 주었다. 주말이 지나고 방문했을 때 주말 잘 보냈냐고 묻자, 엄마와 서점에 가서 가게에서 읽었던 책의 작가의 다른 책을 샀다고 했다. 추천해 준 책을 꽤 마음에 들어 해 주어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우리 사이에 작은 화젯거리가 생기며 조금씩 대화를 이어가는 작은 즐거움이 생겼다.


 어느 날, 가게가 너무 조용해서 조금 침울해졌다. 가게 매출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좀처럼 잘 해내기 어려운 다짐이었다. 더 우울해지기 전에 얼른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 고양이에게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가게를 살짝 지나쳐 세워진 차 한 대에서 누군가가 내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녀 손님이었다. 늦은 시간엔 처음이라 조금 어리둥절해져 안사를 하자, 소녀는 양손 가득 들고 있던 귤 한 봉지와 모과 두 개를 건네주었다. 마트에서 엄마와 장을 보다가 내게 주고 싶어 샀다는 귤 한 봉지와 엄마가 근무하시는 학교에서 딴 모과라고 했다. 준비해 온 듯 해 보이는 멘트를 쑥스럽다는 듯이 얼른 쏟아내고 소녀는 바로 차로 뛰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차가 지나갈 때까지 지켜보다 내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걱정과 침울함으로 채워져 있던 내 마음은 새콤하고 달큼한 노란빛으로 뒤덮였다.


 언젠가 소녀의 어머니는 내게 고맙다고 하셨다. 우리 딸아이가 소심하고 사교성이 부족한데 여기를 너무 좋아하고 사장님을 너무 좋아한다고, 사장님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으시다. 그 말을 듣고 나를 부담스러워해 주지 않아서 또 이곳을 좋아해 주어서 너무 고마웠는데 이젠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준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버렸다. 이렇게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소녀는 앞으로도 분명 따뜻한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멋진 사람이 되길 응원한다. 언제나 이 소녀가 우리 가게에 오고 싶을 때 올 수 있게 나도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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