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gi May 13. 2023

보호자의 삶이란2

불량 집사

 동물 병원에 갔다. 며칠 동안 우리 집 고양이(첫째 제리)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밥을 절반 정도 남기고 움직이질 않고 쭉 잠만 잤다. 1-2일 정도는 뭐 가끔 밥 좀 남길 수도 있으니 상황을 지켜보자, 하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는데 토요일 아침인 오늘, 조금 컨디션이 좋아 보여 이제 괜찮나 보다 하고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놀이 반응이 굉장히 좋지는 않아도 조금 관심을 보이길래 살살 놀아주고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주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주로 간식을 던지면 달려가 냉큼 먹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뛰지 않았다. 처음엔 간식을 못 봤나 싶어 시선을 끌고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는 뛰어가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간식을 향해서인지 허공을 향해서인지 갑자기 하악질을 했다. 날카로운 소리를 실컷 내고 한껏 예민해져 자기 숨숨집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너무 놀랐고 심장이 떨어진 것 같았다. 숨이 멎을 듯한 느낌이 이런 거구나 했다.


 구토나 설사를 하지도 않았고 식욕이 저하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먹고 있어 잠시 지켜보며 병원을 갈지 말지 고민하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굉장히 후회했다. 병원이 집에서 매우 먼 것도 아닌데, 난 왜 말로는 늘 걱정하고 항상 바라보고 있다면서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고 한탄했다. 출근을 앞두고 가게 오픈 시간을 재공지하고 병원 오픈 시간에 전화를 했다. 이런 통화는 항상 목소리가 떨린다. 나와는 다르게 차분하게 전화를 받아 주신 병원 직원 분에게 바로 방문하겠다 하고 바로 병원으로 출발했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건강검진은 상황을 보고 추후에 하기로 했다. 다행히 크게 눈에 띄는 질병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음 주쯤 쉬는 날을 조정하여 방문을 하면 될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이것저것 물으셨다. 식사량, 주변의 환경 변화, 화장실 횟수 등 꽤 많은 질문에 내가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은 고작 절반 정도였다. 식사량조차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실 두 마리가 함께 사는 집에서 동생 고양이가 밥을 뺏어 먹었을 가능성도 있고, 주변 환경으로 현재 우리 집 근처엔 공사를 하는 곳이 없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공사나 집수리가 진행이 되어 큰 소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낮에 집을 비우는 나는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 밖에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너무 한심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였다. 항상 사랑한다, 잘해주겠다 했지만 정작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하루의 12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더불어 휴일도 너무 적어 우리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 주고 보살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나 역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가게 일이 내 뜻대로 잘 안되면서 여기에 몰두하는 날과 시간이 늘어나고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결국 내가 쉬는 시간과 고양이들을 보살 필 시간이 적어졌던 것이다. 계속 일을 할 생각을 했다. 나는 피곤해도 좋다, 결국 돈이 있어야 더 좋은 사료와 좋은 캣타워, 더 좋은 장난감, 갑자기 병에 걸렸을 때 병원을 데려가려면 결국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잘 이끌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 현재에 따라 미래가 바뀌니깐. 난 무엇보다 우리 고양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무 부족한 것 투성이라 더 좋은 집사를 만났다면 더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보다 내가 더 잘해줄 수 있다는 다짐을 갖기로 했다. 난 우리 고양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우리 고양이들이 이 집에 와서 행복해,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내길 간절히 바란다.


아프지마 우리 애기

 

작가의 이전글 보호자의 삶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