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어 줘서 고마워

자투리 샌드위치

by Nari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연다. ‘아, 오늘은 또 뭘 먹나..‘ 하며 냉장고 안을 쓱 둘러보는데 마땅히 뭐가 없다. 요즘 장보기도 귀찮고 미리 뭔가를 만들어 둘 만큼 시간도 없어서 냉장고가 빈 것은 당연하다. 퇴근하고 나면 마트도 들리기 귀찮을 정도로 요즘은 너무 피곤해 바로 집에 오기 바쁘고 집에 와서도 그대로 누워 버리기 일쑤다.

냉장고에 오래 묵혀 둔 야채들이 있다. 반 정도 남은 쪽파와 양파, 3개 묶음으로 사 먹고 남은 팽이버섯 1 봉지, 계란 3개. 이런 자투리 야채만 남았을 땐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바로 자투리 샌드위치다. 흔히 옛날 토스트라고 말하는 이것은 본디 계란 부침에 양배추나 햄을 넣고 버터가 듬뿍 발린 팬에 앞 뒤로 부쳐 케첩, 마요네즈, 설탕을 뿌려 먹는 샌드위치다. 노릇하게 굽혀 따뜻하고 버터향이 풀풀 풍기는 이것, 클래식의 대명사가 아닐까 싶다.


난 이 옛날 토스트를 자투리 샌드위치라고 부르고 있다. 냉장고에 야채가 조금씩 남으면 모조리 잘게 썰어 넣어 두툼한 계란 부침을 만들어 속 재료로 쓴다. 케첩, 마요네즈, 설탕은 당연히 듬뿍 뿌리는 것이 가장 좋다. 계란물속에 브로콜리나 시금치를 넣으면 프리타타 느낌을 낼 수 있고 양배추를 썰어 넣으면 오코노미야끼처럼 되어 데리야끼 소스를 뿌리기도 한다. 햄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빼고(냉장고에도 늘 없다), 참치는 가끔 넣기도 한다. 야채가 많을수록 계란 부침의 부피는 커지고 거대한 샌드위치가 되는데, 이것이 야채라고 생각하면 건강한 한 끼를 먹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오후가 되자, 갑자기 강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갔으나 입은 옷은 이미 비에 다 젖고 말았다. 밖에 둔 화분이 쓰러질 듯하여 실내로 옮기려 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너무 쎄 나가지 못하고 다시 닫았다. 그때, 잠시 가게 안에서 밥을 먹고 있던 고양이가 뛰쳐나갔다. 아마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며 자신에게 가까이 오자 무서웠으리라. 그래도 이렇게 비가 오는데 나가면 어쩌나 싶어 나도 따라나갔다. 8개월 정도 된 그 고양이가 비바람에 날아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근처 주차장에서 아이를 발견하였다. 비바람을 피해 차 밑에 숨어 있는 아이를 보고 데려올 방법을 고민을 했지만 오히려 내가 꺼내려하면 두려워 더 도망갈 것만 같았다.


그냥 가게로 돌아가기로 했다. 워낙 똑똑한 아이니 아마 비가 조금 잦아들면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비가 강하게 내렸던 만큼 빗줄기는 꽤 빨리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엔 먹구름이 꽤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어 머지않아 비가 그치겠구나, 생각했다. 어느덧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쯤 고양이는 돌아왔다. 비는 나만 맞았는지 생각보다 뽀송한 모습으로 왔다. 참 다행이었다.


심하게 허기가 져 빵을 구웠다. 잡곡 식빵 두 장을 오븐에 바삭하게 굽고, 집에서 가져온 계란 부침을 얹었다. 사과가 있어 아삭함과 달콤함을 추가했다. 마음 가는 대로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리고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렸다. 빵 보다 두꺼운 계란 부침의 든든한 생김새에 먹기 전부터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담백한 계란에 여러 야채들이 조화롭게 착 달라붙어 있었고, 처음 넣어 본 팽이버섯은 오독오독한 식감을 주어 먹는 내내 재미있었다. 계란과 케첩의 조화를 참 좋아하는데, 다음엔 칠리소스나 고추냉이 마요를 넣어 새로운 매콤함과 감칠맛을 추가해 보고 싶다.


자투리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냉장고를 비우면 꽤 큰 희열을 느낀다. 항상 조금씩 남는 야채들로 만드는 음식 레시피를 저마다 가지고 있지만 난 이 자투리 샌드위치가 최고인 것 같다. 같은 레시피지만 냉장고 사정에 따라 늘 조금씩 다른 맛으로 색다름을 줄 수 있고 이처럼 든든한 샌드위치는 에너지 소모가 많은 낮에 점심으로 먹으면 딱 좋다. 비를 쫄딱 맞아 평소보다 더 몸이 고된 날이었지만 데운 우유 한 잔과 먹는 자투리 샌드위치는 꿀맛이었다. (음식은 상황에 따라 맛이 변하는 성질이 있는 듯하다) 이어지는 장마철,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만든 요리, 어떠신가요?


남은 치즈도 넣는 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생각보다 허겁지겁 먹게 되는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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