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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Aug 14. 2023

고양님, 먹어주세요, 제발..!

중꺾마

 어느 날 나타난 길고양이 치즈 고양이. 이름은 너구리, 애칭은 구리. 구리에게 밥을 주고 집을 만들어 주고, 구리가 이 가게에 점점 스며든 지 벌써 9개월이 되었다. 이젠 구리를 보러 가게에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자기 멋대로 손님의 무릎에 올라가기도 하고 출입구 앞에 드러누워 있기도 한 자유의 영혼의 고양이이다.


 길고양이는 열심히 관리를 해야 한다. 더불어 가게를 왔다 갔다 한다면 더더욱. 매일 아침 빗질도 열심히 한다. 구리는 유달리 빗질을 좋아하는 고양이다. 난 이미 두 고양이의 집사로 집에 있는 아이들도 아침마다 빗질을 해주는데 너무 싫어해서 츄르를 먹여가며 겨우 조금씩 하는 정도인데, 구리는 빗질을 해주기 전까진 밥도 안 먹고 가게 한가운데 앉아서 청소를 방해한다. 이젠 내가 포기하고 오자마자 빗질을 해 준다. 빗을 드는 순간 기쁨의 소리로 "냐야-------"를 외치며 빗질해 주는 장소로 가서 기다린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배도 보여준다. 꼼꼼히 시원하게 빗질을 해 주다 보면 그릉그릉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게 그렇게 기쁜 거라면 얼마든지 더 해주겠다며 나 역시 열심히 빗겨준다.


 문제는 바로 약을 먹이는 날이다. 츄르를 먹는 날이 귀하던 시절(?)엔 츄르 속에 넣어 약을 먹이면 참 잘 먹었는데, 몇 번 당한 걸 아는지 점점 의심하는 혀로 츄르를 먹어 결국 약은 튕겨져 나가 버렸다. 아오. 바닥에 떨어진 아까운 몇 알들.. 길 고양이에게 약 하나를 먹이려면 한 통을 써야 할 듯하다.


 이 츄르 저 츄르 다 해보다 얼마 전 선물 받은 무스 타입의 습식 간식이 생각났다. 습식을 한입 정도로 덜어 그 속에 약을 1/4로 조각내 넣었다. 물이 많은 타입이 아니어서 냠냠하고 먹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때껏 워낙 많이 실패해서 큰 기대는 없었기에, 더위를 피해 널브러져 있는 (마침 배고픈) 구리 앞에 접시를 놓았다.


 아니, 웬걸! 바로 냠냠하고 약을 싹 다 먹었다. 놀람과 기쁨, 그리고 성취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하는 약간의 허탈감도 함께 느껴졌다. 구리도 갑자기 간식을 줘서 기분이 좋아진 듯 보였다. 서로가 행복한 약 먹이기 시간이 되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구리야, 구리야, 그저 건강만 해라. 고양이는 그저 건강하게만 있어주면 최고야!



가운데 3개만 약이 들어있다. 처음엔 약을 빼 구리가 마음을 놓고 먹게 하여야 한다. 다 먹고 입을 다시기 때문에 마지막에도 약을 뺐다.
빗질 중. 이래보여도 행복해 하는 중


벌써 끝났냥? 더 빗겨 줘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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