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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Oct 12. 2023

고양이 밥터

 오늘도 아이들은 밥을 먹으러 왔다. 이곳은 나의 일터이자 이 동네 몇몇 고양이들의 밥터이다. 가게에 내내 눌러붙어 있는 애도 있고, 몇 번씩 밥만 먹으러 오는 애도 있다. 가게 안에서 영업시간 동안 내내 잠을 자는 아이는 만난 지 곧 일 년이 되어간다. 이름은 너구리, 얼굴과 꼬리가 너구리와 닮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야무지게 먹으러 오는 아기 고양이도 있다. 10개월 정도 된 캣초딩의 면모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삼색 고양이 개나리는 봄에 만나 노란 눈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예쁘게 생긴 고등어 고양이는 손님이 지어준 이름 코봉이로 불리고 매장을 처음 시작할 때 종종 만났던 치즈 고양이는 울음소리를 따 애옹이라고 부른다. 매일 올 때도 가끔 올 때도 있는 이 아이들은 요즘 가을이 되어 식욕이 부쩍 상승했는지 종종 찾아와 자꾸 밥을 달라고 한다. 요즘은 해가 지면 날이 추워져 문을 닫고 있으면 울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온지를 잘 모르고 일을 하다가, 뭔가 싸한 기운에 문쪽을 보면 유리문 밖에서 큰 눈으로 날 노려(?) 보고 있다. 늘 미안하다..


 (너)구리에게 밥을 준 지 벌써 다음 달이면 1년이 된다. 쉬는 날에도 꼬박 밥을 주러 매장에 나왔으니 365일을 보고 밥을 준 셈이다. 매장 안에서 쉬며 손님 무릎에도 종종 앉아 잠을 청하는 무릎냥이다. 이런 길고양이라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빗질도 하는데 구리는 빗질을 참 좋아하는 고양이다. 그릉그릉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굴뒹굴 대며 온몸으로 행복을 표한다. 벌써 반년이 넘는 기간 빗질을 하다 보니 처음엔 귀찮아 부정했던 일이 지금은 아침의 루틴이 되었다. 고양이들과의 생활은 참 시간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든다.


 밥을 주다 보니 근래엔 모르는 고양이들도 종종 만났다. 대부분 날 보는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폴짝 담을 넘거나 엄청난 속도로 도망간다. 대충 색만 구분할 뿐이다.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라, 항상 미안하면서도 그럴 땐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내 쪽에서 먼저 뒤로 물러나주고 싶다. 상대는 생명을 위협받는 쪽이니 쉽지는 않겠지만..


 오랜만에 애옹이가 왔다. 애옹이는 나의 가게뿐 아니라 근처에 있는 부동산에서 알뜰살뜰 밥을 챙겨주신다. 참 예쁜 받는 예쁜 고양이다. 얼마 전에 만난 부동산 직원분께선 혹시 고양이 봤느냐며, 요즘 통 안 온다며 쓸쓸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 역시 못 본 지 오래되었고, 애옹이는 나이도 꽤 있는 고양이라 모르는 사이에 별이 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애옹이가 어제부터 다시 밥을 먹으러 왔다. 마지막으로 봤던 때 보다 밝은 모습으로, 여전히 예쁜 얼굴로.


 가끔 밥을 주는 곳에 고양이 털이 잔뜩 빠져있는 경우가 있다. 밥 싸움을 한 것일까, 다친 애들은 없나,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밥 잘 줄 테니 싸우지만 말고, 다치지만 말아줘, 제발.



밥 먹는 궁둥이


구리-봉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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