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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gi Oct 31. 2023

가을을 한입

단감과 고구마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 있어?'하고 문을 빼꼼 열고 맞은 편의 이웃이 물어왔다. 이웃 아주머니의 고향은 강원도이다. 친정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며 여름엔 강원도 옥수수를 한 아름 나눠주셨는데, 이번엔 감자와 고구마를 또 한아름 안겨주셨다. 감자와 고구마는 아직 흙이 묻은 채로 나에게 왔다.


원래도 감자와 고구마를 되게 좋아해서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은 듯 기분이 너무 좋았다. 구워 먹고 쪄먹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감자와 고구마이니깐. 그렇게 늘 아침으로 쪄 먹다가 오늘은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먹고자 냉장고를 열었다.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샌드위치에 넣을 생각을 한다.


나에겐 받은 고구마 외에 위층 이웃이 준 단감도 있었다. 은은하게 달큼하고 단단한 단감을 어릴 적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2-3년 전부터는 그 은은하고 부드러운 단맛에 빠졌다. 가을에 단감을 먹지 않으면 가을을 날 수 없을 듯하다. 동네 주택가에 참 많이 보이는 나무 중 하나가 감나무인데, 그 감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빨리 감이 먹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이웃이 나누어 준 감은 하나씩 잡아먹다가 하나가 남았다. 빨리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조금 아껴두고 있었는데, 그 감이 오늘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차례이다.


감과 고구마, 냉장고에 남아 있던 마스카포네 치즈와 슬라이스 치즈를 이용한다.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겠지만 어찌저찌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도전해 보기로 한다. 고구마를 삶고 빵을 굽는다. 익은 고구마와 단감은 비슷한 크기로 잘라준다. 구워진 빵 위에 마스카포네 치즈를 꼼꼼히 바르고, 꿀과 시나몬을 살짝 뿌린다. 그 위에 자른 감을 촘촘히 올리고 그 위에 다시 고구마를 얹고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 덮어 빵을 올려 꾹 눌러 완성이다.


 이 샌드위치는 가을의 색을 닮은 샌드위치다. 노란 고구마와 주황의 감, 갈색의 빵. 가을을 한입에 넣는 기분이다. 선선한 날씨에 어울리는 조금 달콤하고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가졌다. 마스카포네 치즈의 부드러움과 신선함, 어우러지는 단감과 가을함을 더욱 상승시켜 주는 시나몬 향. 은근히 짭조름한 치즈는 달콤한 고구마와 단짠의 콜라보를 이루어주고 달기만 했다면 아쉬웠을 맛에 자극을 준다. 사이에 케일이나 루꼴라 같은 초록 야채를 조금 넣어도 좋겠고, 땅콩버터나 블랙커런트 잼 같은 낮은 산미의 소스를 첨가해도 좋을 것 같다.


 가을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곧 가을이 끝나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6시만 되어도 어둑해지고 밖의 공기가 서늘해진다. 점점 가을이 짧아지는 것만큼 아쉬운 것이 또 있을까? 어릴 적 가을의 추억들이 꽤 많다. 가을 운동회와 가을 소풍, 단풍을 구경하고 케이블카를 타보고. 단풍을 주워 책 사이에 끼워 넣기도 하고, 밤을 쪄 먹기도 했다. 가을에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보낸 어린 시절만큼, 요즘은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날들이 늘어가고 그 순간들이 너무 아쉽기도 하다. 바쁘다고 여행을 못 가는 시기라도, 내년의 가을을 약속하며 올해의 가을을 보내기보단 가을에 어울리는 샌드위치로 가을의 추억을 한 장 더 만들어 가기로 했다. 이번의 가을을 또 오지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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