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늦은 밤 스페인의 땅을 밟고 바르셀로나의 예약한 숙소에서 동생을 만났다. 약 1년 만의 만남이었다.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엔 구글 지도 앱을 보며 숙소를 향해 걷던 나를 먼저 숙소에 도착한 동생은 테라스에서 손을 세차게 흔들며 반겨주었다. 일 년 만에 만났지만 겨우 일주일 만에 본 듯한 기분이었다. 익숙하지만 조금 낯선 부분을 가진 동생을 낯선 이국에서 만난 기분은 새로웠다.
어제는 늦은 저녁이라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봐서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냉동 피자와 과일, 다음날 아침에 먹을 것들도 사서 돌아왔다. 도착한 날은 그렇게 피로와 반가움으로 채워졌다. 다음 날, 날이 밝아오고 스페인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테라스에서 들이킨 바르셀로나의 공기에 몸도 마음로 새로움과 설렘으로 채워졌다. 첫날의 목적지는 그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나는 굳이 성당을 내가 방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건축물 자체로도 멋지다는 후기를 잔뜩 봤더니 안 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방문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부터 기분이 좋아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성당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뭐든 다 용서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자마자 성당이 보였다. 먼저 그 높이와 크기에 압도당했다. 가로 세로가 시야에 가득 차 고개를 들어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설계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겉모습에 시큰둥했던 좀 전과는 다른 두근거림을 가지고 입장을 했다.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이 흡사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여행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다 같구나, 다 같은 걸 보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친밀감이 들어 괜히 기분이 한층 더 들떴다.
성당은 내부는 아름답다는 말을 넘어섰다. 표현력이 부족한 내게 있어 감상을 말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그곳엔 거대하게 우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느 기둥하나 대충인 것이 없어 모든 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몽롱한 정신으로 빛멍을 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천장을 보니 꼭 눈이 내리는 것 같이 하얗고 밝아 아름다웠는데, 찾아보니 구름과 내리는 비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 하늘을 보리라는 생각을 했다. 빗물에 눈이 감긴다 해도 말이다.
성당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미리 찾아둔 곳이 없어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바닷가 식당에서 먹고 싶다는 동생의 의견을 받아 구글맵의 도움으로 빠에야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았다. 그래도 빠에야는 한번쯤은 먹어야 스페인 여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만난 푸른 하늘과 구름은 나에게 바다 마을 생활을 꿈꾸게 하였다. 바닷가에 살면 늘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도달해 부러움에 속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바다는 항상 넓지만 유럽에서 보는 바다는 더 넓은 듯한 착각을 주었다.
한 식당에 도착해 빠에야와 무슨 스테이크(무슨 고기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날씨가 좋은 점심 식사에 맥주는 빠질 수 없지 않은가. 넓은 바다를 보며 심심한 자유를 느꼈다. 내일도 현실(직장인의 일상)이 아닌 여행 속에서 보낼 생각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는데, 수프가 먼저 나왔다. 스페인에 오기 전 봤던 여행 책에서 본 적 있는 냉토마토 수프인 가스파초였다. 위엔 정성 그런 수란이 올라가 있었다. 토마토와 계란은 아는 맛인데 신선함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정체불명의 요리가 아니니 크게 망설이지 않고 먹었다. 삼삼하고 시원한 토마토가 입맛을 돋아주었다. 뒤이어 나온 빠에야도 이름 모를 스테이크도 맛있게 먹었다. 사실 크게 도전적인 메뉴가 아니어서 쉽게 먹을 수 있었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음식을 먹는구나, 아 여기서 살려면 살겠어,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난 내가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낄 때 안도와 자유를 느낀다. 이날의 식사는 한동안 직장 생활로 인해 닫혀있던 내 마음에 살랑 자유를 불어넣어 주었다.
성당 이외엔 별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자유롭게 걷고 먹었다. 틈틈이 젤라토를 먹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구경하고. 내가 가장 추구하는 여행 방식이다. 그냥 길거리를 구경하고 사람들이 자주 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동네에서 가장 활발한 마트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며 하루를 보내는 것. 잠시 머무는 여행자이지만 이곳에 살고 있다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 여행의 첫날인 오늘은 관광객도 되어보고 시민인 척도 해보며 오늘 하루의 시간이 너무 달콤해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보냈다. 좋은 날이었다. 동생은 1년 간의 워홀 생활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나에겐 첫 유럽 여행의 첫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