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꽤 단단하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삶의 우선순위는 명확했고 나름의 기준도 견고했다.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 두 글자가 내 삶의 문턱을 넘어온 순간, 공들여 쌓아 온 기준들은 모래성처럼 고요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믿었던 내일이, 고민 없이 누리던 일상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 서늘한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희미하게 보였던 것들을 선명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따스한 배움 세 가지를 기록해 보려 한다.
오늘 무사히 눈을 감고 다시 내일의 햇살을 마주하는 일.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을 기적과 같은 내일이란 것이다.
출산 직후 심장이 멎을 듯한 위기를 겪었을 때도 어렴풋이 느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호흡이 버거워 병원 침대 난간을 꽉 붙잡고 거칠게 숨을 부여잡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내일은 오늘의 당연한 연장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기적 같은 선물이라는 것을.
8개월 된 아기와 함께 일상을 보내며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어느 평범했던 날, 그날 이후 나의 내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적과 감사가 되어 다가왔다.
나에게 2025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해였다. 새 생명이 태어난 축복의 해였 이기도 했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고통의 해였으며 암이라는 길고 긴 터널에 진입한 해였다. 참 다사다난했던 그 시간 속에서도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이었다.
중환자실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종이에 꾹꾹 눌러써 보냈던 내 마음들. 나를 위해 뜨거운 눈물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 준 이들이 이었고, 힘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먹이고 싶다며 무거운 유리 용기에 직접 만든 음식들로 가득 담아와 준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 내 곁을 지켜준 가족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수술 후 팔을 쓸 수 없는 나를 대신하여 내 오른팔이 되어준 아빠와 동생, 그리고 남편. 엄마의 빈자리에도 씩씩하게 잘 자라주는 나의 아가.
이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웃으며 있을 수 있었을까.
처음 암진단을 받았을 땐 늘 건강했던 나였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제 겨우 돌도 안된 아이의 엄마인 내가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아가와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눈물이 흘러나왔고 앞으로 일상을 잃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나의 눈물버튼인 그들이, 나를 다시 웃게 하는 것도 그들이었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평소처럼 밥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버텼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해내며 오늘을 살아냈다.
밀려온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줄만 알았지만 인간은 그 슬픔 속에서도 밥을 먹고 웃음을 찾아내는 강한 존재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어느덧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한다.
암은 나를 연약하게만 만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이전엔 희미하게 보였던 내일의 소중함, 사랑의 무게, 그리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강인함.
오늘도 나는 나의 아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숨을 쉰다. 이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지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꺼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