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선택

나만의 할 수 있는 일

by moonrightsea

거친 그의 숨결이 달빛 아래 퍼지며 산속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진다.

산을 오르는 그의 마음은 누구보다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연유는 굳이 그에게 묻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산아래서 다가오는 희미한 불빛이 그를 더 조급하게 만들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불빛이 산 중턱 가마터로 향하면 어찌 되는 지를. 그가 산을 넘어 다시 산 아래를 돌아 대왕이 오는 길목으로 가려는 의도를 알기에 그의 발걸음을 돌려 산 중턱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쨌든 그의 이 거친 숨이 멎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한담?


" 앗... "

나는 바닥에 쓰러졌고 놀란 그가 나를 돌아봤다.


" 괜찮소? 어디를 다친 것이오?"

" 아무래도 다리를 삔 것 같아요. 걸음을 걷기 힘든데... 어쩌죠?"


" 흠. 그럼 제가 업을 테니 등에..."


그는 너른 어깨를 내어 내게 등에 업히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길로 바로 주저 앉아 버렸다. 그러자 그가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난처한 듯 나를 바라봤다.


" 어찌하여 이리도 시간을 지체하려 드시오?"


그도 알고 있는 터.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 당신이라면 당신의 가족이 저 중턱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그저 버려두고 나 한 몸 살겠다고 그렇게 내빼 버리겠소?"


그는 내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 흠. 제가 데려온 군사도 지금은 대왕을 마중 나간 터라... 중턱으로 간다 한 들 저 많은 사로국 병사를 대적하기는 힘드오. 묘책이 있지 않고서야..."

그는 꽤나 진지하고 난감한 듯 그렇게 힘겹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런 그를 향해 나는


" 묘책은 제가 있지요. "


그가 놀라 내게 물었다.

" 어떤 묘책 말이요?"


" 후훗. 그건 말씀드릴 수는 없고... 우선 당신은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대왕에게 전갈을 전해야 하오. "

" 그게 무슨 말이오?"


그는 당황한 듯 내 어깨를 잡고 돌려세우며 물었다.


" 대왕에게 전하시오. 지금 서둘러 대왕이 본 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곧 중국의 연이 본국을 침략할 거라고."


" 무어라? 그걸 당신이 어찌 아시오?"

그는 분명 많이 혼란스럽고 당황해 보였다. 그런 그의 뒤로 달은 밝게 떠 올라 그의 떨리는 어깨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그의 가슴의 온기를 느꼈다. 내가 살아서 만나는 마지막 온기의 인연이구나.


" 천군의 몸을 빌려 태어난 천녀인 몸.

제게는 하늘의 피가 흐릅니다. 아시다시피 대왕이 탐하는 연유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를 데려가는 순간. 제 몸의 천기는 사라지고. 악기만 남아 그대들의 본국은 피로 물들일 터. 당신의 책 사는 그걸 바라고 있소. "


그의 가슴에 기댄 나를 밀어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며 심하게 흔들렸다.


" 아니... 책사가 당신을 데려 오라고 한 건 어찌 아시고..?"


" 책사의 아들이 이미 본국에서 연을 위해 군사를 무장 해제시키려 준비하며 성문을 열려고 연통까지 넣은 터이니 서둘러야 할 것이오. 다행인 것은 연으로 가기 전인 이유고 그 책사의 아들은 당신의 손에 죽게 되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데려간다면 당신네 혈족은 멸족을 당할 것이니... 이게 하늘의 천운. "


그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 하아~. 어차피 당신을 여기에 두고 내려간다면 나는 대왕에게 죽음을 당할 터이고. 당신을 저 중턱에 데려간들. 당신과 함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지 않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 하지만 나는 저 중턱으로 가야 하오.

당신은 이곳을 벗어나 대왕에게 이 징표를 전하고 내 말을 전하시오. 이건 천군이 건넨 징표. 아마도 대왕은 이 징표를 보면 책사의 목을 칠 것이오. 대왕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원대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하여 우선은 본국으로 먼저 귀환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나는 내란을 수습하고 데려가도 늦지 않다고 기다린다고 전해주시오. 한시가 급하니 서둘러야 합니다."



그렇게 꼭 끌어 안은 그를 그의 등을 나는 어루만지고 천천히 내 목에 천군이 걸어주었던 목걸이를 풀어 그에게 건넸다.


내 아비, 천군은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 아가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하렴. 이제 더는 너를 지킬 수 없으니 앞으로 나를 절대 아비로 보아서는 안된다. 네 아비는 이 자리에서 죽었으니 그리 알고... 너를 데리러 오는 장수에게 이 목걸이를 건네거라.

그리고 그에게 전해라.

이 목걸이를 대왕에게 주며 책사의 목을 베어야 그가 원하는 원대한 대국이 설 것이라고.

나는 여기 오는 대왕에게 네가 내 신묘한 목걸이를 들고 달아나 신기가 사라졌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야 여기 백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으니. 미안하구나. 아가. "




그는 떨리는 손을 들어 내게 키스를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손을 놓자 나는 그의 팔을 다시 끌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파르르 떨리는 볼을 어루 만지며,


" 당신은 꼭 살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그러니 꼭 살으셔야 합니다. 저를 위해."


그는 어느새 눈물을 감추려 돌렸던 발길을 멈추며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봤다.

눈물이 맺힌 그의 얼굴. 눈에 선한 그의 애절한 마음.


" 내가 돌아오면 당신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요?"

그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전해지지만 나는


" 답은 이미 하늘이 정해 놓은 터. 우리의 운명은 이미 여기까지 인터. "


나는 그에게 키스를 하고 그의 눈을 감겼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 어서 달리시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서!"


그는 무엇인가 홀린 듯 그렇게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신 고개를 돌리는 그의 머리와 상관없이 그의 두 다리는 미친 듯 아래로 내달렸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중턱의 가마터를 바라봤다.

사로국의 이들이 다 와 가는구나.


그들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되는 나의 능력. 내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 같은 선택.




산 중턱 가마터 입구에 들어서자, 어느새 사로국 선발대가 도착해 가마터 앞 백성들을 무릎을 꿇린 채 불이 붙은 장작으로 닥치는 대로 지지며 추궁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여럿 백성이 칼에 맞아 여기저기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통의 신음 소리. 입을 틀어 막고 들리는 고통의 몸부림 소리.


" 어디 갔냐니까? 말하거라!"


" 여기 있지 않느냐. 그만 놓아주거라."


내 목소리에 사로국 선발대들은 나를 바라봤고 분노에 찬 눈으로 이내 그들을 노려봤다.


"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마마. 가시지요. 한참을 찾았습니다. "

그들은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강하게 끌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손을 뿌리치며 노려보며 말했다.

" 내가 가지 않으면?"


" 예를 갖추거라. 천녀님께."


뒤돌아보니 사로국 마립간이 이내 도착해 있었다.


" 내가 천녀임을 그리도 잘 알면서 어찌 이 신성한 땅에 피부림을 보이느냐?"




" 하늘이 정해준 인연을 당신이 피한다고 능사는 아닐 터. 이제 그만하고 저희와 내려가시지요?"


사로국 마립간.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연통을 넣어 혼담을 전해 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기회주의자이고 겁쟁이였다.


늘 사람들이 뒤에서 허수아비를 앞에 세운 채 장수 답지 못한 책략으로 실세 노릇을 해왔고 왜구가 쳐 들어왔을 때도 그들은 결국에는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움에 백성을 지키고 외곽을 정비하려 들지 않고 냅다 달려 고구려에 연통을 넣어 온갖 제물과 감언이설로 대왕을 이곳까지 오게 만들어 결국에는 내 나라를 토막 내 버렸다.


내게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


그런 그들과 혼인을 하라는 천군의 뜻을 나는 순순히 따를 수 없었다.


그게 아무리 하늘의 뜻이라 하여도. 이 자리가 바로 내 무덤자리라 하여도.

하지만 아비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리 하지 않을지도 알았고 내가 사로국에 가면 저 마립간의 목을 벨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내 아비는 나를 이곳으로 보내 버렸을 테니까.


" 하늘이라... "


나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이미 이곳에 당도할 때 거역한 하늘.




나는 하늘에서 내린 명을 그를 살리려 거역하였고 그가 이 사로국 이들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할 운명임을 알았기에 나는 이들을 여기에 묶어두려 했다.


" 잘 보거라. 하늘이 너희들에게 어떤 운명을 보내었는지."


나는 내 옆에 섰던 선발대 한 명의 손을 붙잡고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주변은 혼비백산하며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유유히 걸어가며 그 선발대 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마립간은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엎드렸다.


" 사... 살려 주십시오. 천녀님. "


" 사람 목숨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

하늘이 내게 준 천벌을 이리도 사람에게 내리니 나 또한 천벌을 받을 터. 하지만 너네들이 내 혈족에게 저지른 저 만행을 나는 잊지 않겠다.


그러니 돌아가라. 사로국이 들이여.

내가 그대들에게 스며들 때는 내가 죽은 연 후이고 그대들이 나를 찾았을 때는 내 저주가 끝이 난 터일 테니.

돌아가 그대들의 나라 백성들을 돌보고 내 백성들을 귀히 여겨 그들을 당신들 백성으로 받들라. "


활활 타오르는 나를.

붉게 물든 내 눈을 힘겹게 올려다본 마립간은 두 눈을 질끈 감고,


"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천녀님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제발. 목숨만은..."




" 어서!

그대들이 이 신성한 땅에 흘린 피가 독기가 되어 스며들기 전에 내 눈앞에서 사라지거라. "


헐레벌떡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 산아래로 내달리는 사로국의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천천히 가마터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백성들을 한번 둘러 보았다. 그들에게 괜찮다는 웃음을 보이고는.

나는 다시 천천히 그렇게 몸을 낮췄다.


이윽고. 들리는 곡소리. 흐미하게 들리는 소리.


" 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


" 둥.................. 둥.................... 둥.............. 둥"


나지막하게 울리는 북소리.


내가 천천히 가마 안 불 속으로 들어가자

백성들은 그렇게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감고는 나지막이 곡소리를 내며 나를 추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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