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시간 되면 김집사에게 숯불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모님 사 오신 옷은 어디다 둘까요? 회장님께 보이시고 넣으실 건가요?"
" 아뇨. 그냥 평소대로 입히시면 됩니다. 모처럼 입고 싶어 하는 옷으로 골랐으니 자주 찾을 거예요. "
" 그럼 쉬시죠. "
뒤돌아서는 그녀를 바라보다
" 이실장님? "
" 아니에요. 항상 잘해오셔서 제가 뭐라 말씀드릴 게 없네요. 항상 지금처럼 부탁드립니다. "
" 네 사모님."
하우스키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집을 늘 정갈하고 깔끔히 유지시키며 내가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는 이상 철저히 사무적 지시만 따르는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몸이 베인 사람. 그건 태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우리들의 특성 때문에 우리에게 감정적인 부분이 보여도 어떠한 것도 그들은 절대 물어보지 않았다.
그것이 이곳의 불문율.
그 규칙과 통제를 이끄는 그녀. 태호가 나고 자라는 동안 늘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그를 보필했고 어느 누가 와도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늘 여기도 그녀가 꾸린 팀에 의해 관리되고 인원도 단 두 명. 그것이 그녀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이곳에서 실장의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이곳에서 최고 직급.
제법 길게 태호와 대화를 이어가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태호도 태영의 하루 일과를 전해 듣고 흡족해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은 벌써 10시.
베란다에서 저녁을 먹고 그대로 둔 채. 집안으로 들어오자 숯불 향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태영을 안아서 가정교사에게 호출한 뒤
" 태영이 샤워를 해야 할 거 같아요. 내일 새로 사 온 옷이 있어서 갈아입혀주세요. 태영이도 새 옷 입고 싶지?"
" 응! 갈아입고 내일 올게요. 엄마 아빠 잘 자요. "
태영은 우리에게 입을 맞추고는 가정교사의 품에 안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태호에게
" 나 샤워 좀요. "
그렇게 말하고는 화장실로 향하자 태호가 웃으며 따라 들어왔다. 욕조의 물은 꽤나 넉넉히 받쳐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받아 놓은 물은 제법 식기는 했지만 온기가 전해져 나른 한 몸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물에 들어가자 태호가 나를 감싸 안으며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런 태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그의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러자 그가
" 흐음"
하며 목을 추켜올렸다. 그리고 머리 뒤로 팔베개를 하더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이내 타월을 들고 거품을 낸 뒤에 그의 팔과 목을 타고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가슴 배 그리고 그의 허벅지로 향하자 그가 다리를 쭈욱 길게 들어 올렸다.
그런 그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는 그에게 등을 보인 채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닦았다. 그러자 그가 이내 내게서 타월을 가져가서는 내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내 몸 구석구석 부드럽게 매만지듯.
" 간지러. "
나는 그의 손에서 타월을 뺏어서 다시 욕조 밖으로 던져 버리고는 물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의 다리를 문지르고 그의 몸 구석구석을 샤워기를 틀어 문지른 뒤 일어나 내 몸에도 물줄기를 뿌렸다. 내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 시원하다. 개운해. "
이내 그가 일어나더니 샴푸를 내 머리에 푼 뒤 머리를 문질렀다. 그리고 폼클렌징으로 내 얼굴을 문지르더니 그의 얼굴도 문지르고 다시 샴푸로 그의 머리를 감았다.
" 눈 감아. "
그리고 그는 샤워기를 끄고는 커다란 해바라기 수전으로 나를 이끈 후 내 머리를 헹구고 얼굴을 문질렀다.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손길.
내가 그에게 샤워를 하며 얼굴 씻는 요령을 손수 시범을 보여주며 그를 씻겨준 이후 그와 가끔 이렇게 같이 샤워를 할 때면 곧잘 이용해 먹었다.
내가 눈을 뜨자 그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고 얼굴을 헹궜다. 그리고는 내 허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혀를 내민 채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 그렇게 머리를 파묻은 채.
" 물이란 물은 다 마시겠어요. 나가요. "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와서 그에게 샤워타운을 건넸고 이내 머리를 말리더니 내게 다가와 가운을 걸치는 나를 덥석 안고는
" 이대로 나갈려는데?"
" 그래도 집안이니 조심할 건 해야죠. "
그렇게 말하자 그는 나를 내려놓고는 다시 실크 가운을 걸쳤다. 여전히 풀어헤친 채.
내가 그를 보며 씩 웃자 태호는 내사워 가운을 동여 메고는 다시 덥석 안아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에서 수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대도 신경도 안쓰고 나왔고 나는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을 풀어 그의 머리카락을 닦았다.
안방으로 향하자 그는 바로 침대에 드러누운 후 손을 내게 뻗었고 나는 그의 손을 이끌어 다시 침대 곁에 앉힌 뒤 드라이기를 가져와서는 그의 머리를 말렸다.
그는 그런 내 허리를 꼭 붙잡고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내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그의 머리가 다 말랐을 때 나는 다시 드라이기를 빼서는 옷방으로 향했다. 거기에 있는 화장대에서 머리를 말리고 그의 화장품 옆에 있던 내 화장품을 바르고 손바닥에 그의 화장품을 올려서 그에게 향했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침대에 앉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결 방향으로 문지르며 로션을 바른 뒤 다시 화장대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바디로션을 화장실 앞 파우더룸에서 가지고 나와 그에게 갔다. 어느새 그는 익숙한 듯 가운을 풀어헤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몸 구석구석 다시 바디로션을 바르고 나와 파우더룸에서 다 마르지 않은 머리끝을 마저 말리고 바디로션을 바르고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른 후에 침대로 향했다.
그러자 태호가 덥석 나를 안았다.
" 이제는 끝난 거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만족한 듯 내 볼에 얼굴을 문질렀다.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자 그는 이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는
" 아 오늘은 집에 오래 있으니 더 좋다. "
그렇게 말하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의 머리를 나는 가만히 쓰다듬다 그의 목을 타고 내려와 그의 이마에 코에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그는 내게 다시 거칠게 입술을 가져다 댔고 나는 그의 샤워가운을 벗기고 그는 내 사워가운을 벗긴 채 침대로 드러누웠다.
내가 태영을 만나는 시간은 하루에 5시간 정도.
그것도 주변은 온통 하우스 키퍼와 가정교사가 함께 케어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태영을 바라보며 최대한 웃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태영과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가끔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아파도 주치의가 달려왔고 수업은 오로재 집에서 가정교사와 그녀가 데려온 두 분의 선생님들이 도맡아서 진행했다.
덕분에 태영은 눈을 뜨면 끊임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리당하며 철저히 통제되는 생활을 해왔고 그런 생활이 익숙해져서 세상이 그런 줄만 알고 자랐다. 이실장은 때로는 엄한 엄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할머니가 되면서 진심으로 태영을 아끼고 친 손주 대하듯 그렇게 애정으로 키웠다.
그런 그녀의 헌신이 내 눈에 보였기에 나는 그녀에게 태영을 믿고 맡겼다.
덕분에 태호도 마음 놓고 회사일이며 집안일에 신경을 더 안 쓸 수 있었다. 부부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대신하고 그리고 함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
그것이 생활에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집중력은 어마어마했다.
일의 성과도 달랐고 회사의 성장세도 가팔랐다. 그가 애초에 회사에 마련했던 잘 짜인 시스템에서 착안한 이러한 것들은 그의 모든 생활에서 그 빛을 발했다.
철저한 분업화 집중화 성과급. 감정의 개입이 조금도 들어가는 날에는 가차 없는 시스템 정비. 그것이 바로 그의 가치관이자 그의 사업 운영 방식이었다.
오히려 감정적 개입은 그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에게 분석 대상이자 차지하고 싶은 동기가 되는 것들.
그 감정의 정점에 항상 존재하던 나.
그의 분노와 그의 쾌감과 그의 절정을 모두 손에 쥔 나라는 존재.
새벽에 몸에 한기가 느껴져 눈을 뜨자 창밖에 붉은 달이 떠 있었다.
'때가 되어가는구나.'
문득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완벽에 가깝게 짜 맞춰지는 순간. 그 완벽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법.
나는 태호의 품에서 살며시 일아나 그의 서재방으로 향했다. 오크색상의 가구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책들. 그 사이 책 한 권을 뒤로 젖히자 이내 서재 왼쪽 귀퉁이 책장이 뒤로 들어가며 입구가 열렸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안. 반짝이며 환하게 켜진 대화면 모니터 몇 대에 쉼 없이 데이터가 올라가고 있었고 그 옆으로 길게 이어진 모니터에는 각종 CCTV의 데이터가 분석되며 쉼 없이 모니터 한쪽의 폴더로 나뉘어 분류되고 있었다.
내가 태영이라고 적힌 폴더에 손을 가져다 대자 방 안이 환하게 밝혀지며 그가 들어왔다.
"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데? 궁금했나 보구나? 나가자. 나가서 설명할게. "
" 아니 안 그래도 돼. 이미 알고 있어. "
순간 그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지는 게 눈에 보였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의 화가 난 표정.
"내가 다 설명해 줄 테니. 그만 나가자. "
그는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고 나는 그런 그의 손을 뿌리쳤다.
" 저 데이터는 지웠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며 화면의 태영폴더를 다시 손으로 누르자 그가 이내 모니터를 꺼버렸다. 그리고 매섭게 노려 보며,
" 저게 얼마나 비싼 건 줄 알아? 우리 회사 미래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를 나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바라보며
" 당연히 잘 알고 있지. 저것 때문에 나를 데려온 거잖아?"
" 당신이 알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그것 때문에 데려온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말고 나가자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거칠게 나를 이끌고는 서재를 나와 거실로 향했다.
거실로 나와 내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자 그는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서는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 당신이 오해할 수 있어. 미리 설명 안 한 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태영이 내 아들인 것도 사실이고 당신이 내 아내인 것도 사실이니까. 저 자료가 결국 우리를 위한 자료가 될 테니까. "
" 아니지. 당신을 위한 자료지. 애써 우리를 가져다 붙이지는 말아줘요."
" 아냐. 그래서 내가 오해라고 하는 거야. 분명 당신이 오해하고 있어. 난 정말 우리가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저 자료만 있으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와도 대응할 수 있는 근간이 될 테니까."
나는 천천히 스탠드 바로 향해서 와인을 한병 꺼낸 뒤 한잔 들이켰다.
"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계획인 거고. 그렇다고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아. 잘 알잖아요?"
" 아냐. 시대가 달라졌잖아. 이제 더는 운명 따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는 바꿀 수 있는 힘도 있고 그럴 능력도 충분해. 당신이 달라졌고 태영이도 태어났고 이제야 우리는 안정기에 접어든 거라고. "
"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안전하고 이게 행복이라고?"
" 그게 무슨 말이야? "
" 후훗. 그러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해요. 당신에게는 세희가 있으니까. 이제야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또 그럴 때가 된 거 같으니. "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옷방으로 들어갔고 위스키 잔을 들고 소파에 앉았던 태호가 불길함을 느끼고 뒤늦게 나를 따라 들어왔을 때 나는 시간을 멈추고 연기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