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입구
내 능력이 점차 회복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디선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다른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숨을 대신해서라도 간절히 갖고자 하는 마음.
하늘이 애초에 내게 주었던 능력들이 직면한 것은 인간의 욕망 중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돌보는 것.
하지만 내게 그 힘이 되돌아오기 전, 나는 내게서 사라졌던 능력이 되살아 나기 전에 그 힘을 움직이는 원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태호와 세희가 내게 바란 것. 그것은 하늘의 힘을 받은 자의 피로 맺어진 인연.
태호는 욕망을 위해 그 힘을 얻고자 했고 그 힘을 가진다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희는 사랑을 얻고자 하는 마음. 자신의 마음속 비어진 한 조각. 영원한 사랑을 얻어 자신의 삶을 완벽히 만들고자 하는 마음.
세희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을 때 그리고 그 강한 기운이 점차 나에게로 향하는 것이 보였을 때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가 악귀로 변하는 것을 그냥 보고 둘 것인가. 아니면 그녀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내어 주어 그녀의 마음에 일말의 동정심이 생기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태호가 자신이 가진 데이터로 수없는 연구를 거듭하며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마음을 무기화시키려 들 때 그것 또한 나는 그가 악귀의 그늘로 잠식당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에는 그 탐욕으로 그의 마음이 무너지리라는 것도.
그가 모든 것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려 들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탐욕은 시작된다.
" 눈치챘구나?"
내가 세희 곁으로 다가갔을 때 세희는 잠든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 네가 언질을 줬으니까. "
" 궁금했거든. 내게서 사라진 힘이 왜 언니에게 안 가고 있는지. 왜 그냥 언니를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도록 뒀는지."
" 그래서 해답은 얻었어?"
" 태영이를 보며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세희는 천천히 창문가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 그럼 네가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알겠네? 근데 왜 흔들린 거야?"
" 글쎄. 내가 갖고자 한다고 가져질까...?라는 마음? 이미 있는 대로 언니는 길을 들여놔서 말이야. "
나는 천천히 세희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였다.
" 네가 마음먹은 거 보였어. 이미 오래전에. 하지만 나는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야 네게."
" 가능할까? 난 언니처럼 심지가 곧고 반듯하지 않은 거 같은데...?"
" 아니 너라면 가능해. 하지만 그의 마음도 태영의 마음도 지금은 그대로 둬야지. 시간이 걸릴 테니까. "
" 내가 갖고자 하는 게 평생 안 가져진다면?"
나는 그녀와 나란히 창가로 다가섰다.
그녀의 손에 나무조각이 보였다. 언젠가 나의 등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던 그 조각.
"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런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은다는 사실. 나를 태워버리는 순간. 다시 악몽이 시작될 거야. 너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아마도 네가 그걸 놓아야 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세희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뻣었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 애초에 알다시피 네가 나를 없앤다 해도 끝나는 일들이 아냐. 네가 끝을 내는 게 아니거든. 끝은 태호가 내는 거지. 그게 운명이니까. "
" 항상 그놈의 운명 타령. 난 더 이상 허망하게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지 않을 거야. 언니를 위해서도 말이야. "
세희는 제법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나를 노려봤다.
" 그럼 잘 생각해. 태호는 네 머리에 나를 심을 계획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
" 그렇게 해서라도 태호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난 견딜 수 있어. "
" 아니. 그전에 네가 망가져 버릴 거야. 하늘의 운명을 타고 나 고난 피는 그 운명이 정해져 있는 법. 태영이가 네가 사랑하는 태영이가 타고난 운대로 살려면 네가 필요해. "
" 태영인 애초에 언니 배로 낳았잖아. 내게서 뺏어가서. 하늘이 언니에게 줘 버린 거잖아! "
나는 천천히 세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 손으로 부르르 떨며 나뭇가지를 움켜쥔 그녀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손에 쥔 채.
" 그래야 둘 다 사니까. 너도 살고 태영이도 태어나니까. 그게 우리가 바뀐 운명이니까. "
" 그래서 내가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태호의 마음도 갖지 못하고 평생 언니만 그리워하는 태영을 내 품으로 내 자식으로 안은 채?"
" 잘 봐. 이 나뭇가지. 한낯 그냥 나뭇가지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향해 분노의 마음을 먹는 그 순간. 너는 악귀가 되고 네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고 나는 힘을 되찾아서 너를 거두러 올 거야. 알잖아?"
그러자 세희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며 눈물을 쏟았다.
" 모든 걸 모든 걸 가졌다 생각이 들 때 모든 게 눈처럼 사라지고 있어. 허망하게 내 손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있다고. 태호도. 태영도 아빠도... 모두... 내가 이뤘던 그 많은 것들이 다!"
나뭇가지가 화르르 불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나뭇가지를 잡고 놓치지 않았고 어느새 내 손에는 검붉은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화염에 휩싸이며.
그러자 그제야 정신이 든 세희가 내게 다가와 나를 부둥켜안으며,
" 언니 미안해.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아냐. 내가 내정신이 아냐. "
나는 그런 세희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오른손에 올려져 있던 나뭇가지가 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며 뿔뿔이 흩어졌다.
" 세희야. 행복하게 살아. 행복은 네가 마음먹기 달렸어. 그가 빈 껍데기라고 생각하면 평생 그는 정말 네 곁에서 빈껍데기처럼 지낼 거야. 태영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네가 그들을 진심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보살피고 함께 한다면 그들은 이제 네 가족이야. 나는 오늘 그곳을 떠났으니까. "
" 언니... 미안해."
세희는 그제야 내 눈을 바라보며 눈물을 주룩 흘렸다.
" 때로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법. 애초에 너를 위해 태어난 태영이야. 태호 씨가 마음을 달리 먹기 전에 그를 막을 사람은 너뿐이야. 네가 곁에서 잘 보살펴 줘. 그의 마음이 허하지 않도록. 그의 마음이 비어 그것을 채우려 더 탐욕에 찌들기 전에. 그걸 돌릴 사람은 너뿐이야. 난 아니거든. 너만큼 그를 사랑하지도 태영이를 잘 보살필 능력도 안돼. 그러니 날이 밝은 대로 이걸 가지고 가서 그에게 말해. 그를 지켜주겠다고. 너도 알다시피 그가 나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어. 기억해."
나는 그녀에게 내 목에 걸려 있던 다이아몬드가 박힌 수정 구슬목걸이를 주었다.
태호가 내가 태영을 낳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내 목에 걸어준 목걸이.
그가 어떤 노력과 재주로 그것을 다시 구했는지 모르지만 그 몇천 년 전의 빛을 아직도 잃지 않고 여전히 영롱한 빛을 띤 그 목걸이의 기운은 내가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런 내 생명과도 같은 것을... 내어 주었다는 의미는 이미 태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떠난다는 의미임을.
" 적어도 네가 그걸 걸고 있는 동안은 네게 태호의 애정이 갈 거야. 그러니 너도 그 목걸이를 풀지 말고 잘 간직해. 혹여 나중에 아주 나중에 태영이 네게서 그 목걸이를 뺏으려 들면 그렇게 말해. 태영의 목숨을 지키는 거라서 줄 수 없다고. 그럼 그 아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거야. "
세희가 창밖의 붉은 달을 바라보다 나를 바라봤을 때 나는 인사도 채 못하고 사라졌다.
그녀가 느끼는 어떠한 감정도 미안함, 죄책감...
그 어떤 마음도 나는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내 것이 아닌 마음들. 그저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이제 더 이상은 내게 주려 한 들 나는 받아들일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그들과의 인연을 정리해야 하기에.
내가 정우의 곁으로 갔을 때 문득 정우는 바닥에 누워 잠을 잤고 그의 침대 위에 웬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곁에 누인 여인이 자고 있었다.
스며드는 달빛에 얼굴을 보자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젠가 정우를 만나러 갔던 소방서에서 봤던 여자.
정우를 그렇게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정우를 봤을 때 정우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이내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는지 모르겠다.
그에게 이혼서류를 보내면서 내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같이 적어 보냈을 때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못 본 척했다. 이유는 다른 사람을 만나 그의 아이를 놓아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음에도 그는 마치 내 계획을 알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렇게 무심히 넘겨 버렸었다.
그런 그와 정영을 함께 두고 돌아설 때도 나는 이별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나란 존재. 가족.
그 믿음과 그리움의 마음을 너무 숱하게 봐왔기에 나는 내 머릿속에서 계획을 위해 그들의 존재를 쉽게 지울 수 있었다.
떠올리지 않아야 지킬 수 있는 존재. 내가 탐내지 말아야 존재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정우에게 갔을 때 그녀를 보자 나는 흔들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급히 시간을 멈추고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