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유원지

by moonrightsea

감기몸살로 며칠을 빠지고 시험기간으로 며칠을 빠진 뒤 겨우 하루 수업을 하고 보니 오늘은 현장학습.


"어린이도 아닌데 웬 유원지야. "

"뭘 그래. 다들 신나서 난린데. 그만 투덜거려. 이미소."


희경은 투덜거리는 내게 무심한 듯 툭 던지고는 내 곁을 지나 버스 제일 뒷자리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창문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꼽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

휴. 곁에 오지 말란 거지. 알았다. 칫.


모처럼 쉬는 토요일 현욱이도 없는데 난 놀이기구도 안 좋아하는데 유원지라니. 석가탄신일이 겹친 토요일 화실에서는 모처럼 단합회 겸 유원지로 현장학습을 간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전날 버섯머리를 한 3학년 선배가 와서는


" 너 성현이랑 친해?"

" 네? 아 아뇨?"

" 알았어."


그러고 간 터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미 화실 내에는 그 언니가 성현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매번 간식에 음료를 가져다주고 있다고 곧 고백할 거라는 말이 파다하게 번져 있었고 나를 마치 입안의 가시처럼 바라보는 눈빛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구세주 현욱이 마저 오늘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며 빠진 마당에 난 그럼 혼자 버스 타고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 옆에 아무도 없지? 그럼 내가. 털썩."




성현오빠가 옆자리에 앉았다.

" 엇 오빠. 아니 선배. 3학년은 뒷자리.."


" 그런 게 어딨어. 앉고 싶은 대로 앉는 거지. 원장샘 안 그래요?"

" 그래. 오늘은 네가 미소 단짝 좀 돼줘라. 현욱이 몫까지. "

" 옛썰. 안 그래도 현욱이한테 부탁받았어요. "


아 눈치 없는 자식. 멀 그런 걸 부탁하고 그러냐. 내 마음도 모르고. 이 심란한 마음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자, 그가 내 귀에 이어폰을 가져다 꼽았다.


" 같이 음악 듣자. DJ DOC 좋아해?"

" 아 네. 뭐. "

이미 이어폰은 내 귀에 꽂혀 있었고 그 너머로 DJ DOC의 여름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고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당황하며, 과자를 꺼내 들었다.


" 이거 드실래요?"

" 고래밥 좋아하는구나? 나 무지 좋아하는데."

" 아 그게 음... 네. "


사실은 고래밥 안 좋아하는데... 그거 현욱이 좋아하는 건데. 긴 시간을 달래며 천천히 한 알씩 먹으라고 현욱이 어제 사준 건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로 향했고 휴게소에서 내린 성현은 양손에 핫바에 음료수를 쥐고 돌아왔다.




" 자 딸기 우유 니 거. "

" 아 안 주셔도 되는데 잘 먹겠습니다. 저 자꾸 얻어먹으니 너무 미안해요.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

" 내 거 사면서 산 건데? 난 초코우유. "


그는 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이어폰을 내 귀에 꽂았다. 그렇게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덜컹. 버스가 덜컹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 미소야. 많이 피곤했나 봐. 어떻게 내가 옆에 있는데 그렇게 잘 자? "

" 아. 제가 어제 잠을 좀 설쳐서요. "

" 보기와 다르게 많이 기대했구나."


" 자 여러분 3학년은 이쪽으로 1, 2학년은 이쪽으로 모이세요. "


차에서 내린 우리는 안내에 따라 유원지를 둘러봤다.

그리고 자유시간이 되자 각자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타러 삼삼오오 모여 놀이기구로 향했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연신 희경을 찾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희경은 안내소 귀퉁이에서 담배를 물고는 열심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뭐 해? 넌 놀이기구 안타?"

" 뭐 하러 유치하게. 그런 거 애들이나 타는 거야. 너는 안타?"

" 아 난 놀이기구 자체가 싫다. 여기도 싫고."


" 여 희경. 담배 혼자 피우냐. 이리 내놔봐. 이 오빠한테 한 개비만."

어디선가 민식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뒤돌아보니, 성현오빠랑 민식오빠 무리가 다가와 있었다. 그 뒤로 그 버섯머리 언니들과 함께.


" 희경아 난 가볼게. "

나는 고개를 까닥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그러자,

" 어디가?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


나를 불러 세운 건 성현오빠였다. 그런 우리 뒤로 버섯 머리 언니와 민식오빠 그리고 그 무리들이 함께 뒤를 따랐고, 당황해하는 나에게 아랑 곳 하지 않고 성현이 향한 곳은 귀신의 집이었다.


" 성현오빠. 가자는 곳이 여기에요?"

" 야. 너 말이 이상하다? 웬 오빠?"'


버섯머리가 또 시비를 건다. 아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 말 조심해. 놀려면 곱게 놀다가. "




성현오빠는 무심한 듯 그렇게 쏘아버리고는 나를 끌고 귀신의 집으로 냅다 뛰어들어갔다. 나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성현오빠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 저런 애는 강하게 나가야 찍소리 못해. 그러니 그냥 넌 내 뒤에 가만히 있어. 잘 따라와. "


아 난 정말 귀신 싫어하는데 성현오빠의 뒤를 따라가는 내내 나는 그의 팔에 매달려 놓치지를 못했다. 어떤 때는 그가 내 어깨를 감싸고 내 눈을 가리고 종종걸음으로 걷기도 어떤 때는 내 두 팔을 자신의 어깨 위에 얹힌 채 살며시 내 골반을 두 손으로 감쌀 때도 나는 온통 현욱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귀신 보다 현욱이가 더 눈에 밟히지? 이건 뭐지?'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귀신의 집을 뒤로하고 그가 나를 이끈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소프트 초코아이스크림을 가져와서는 내 손에 쥐어주는 척하던 그는 이내 내 얼굴에 밀어버렸다.


" 앗. 뭐예요. "

" 엇 화난 거야?"

" 아 아니에요. 음. 음? 달다. 맛있네."




얼결에 입에 들어간 초콜릿아이스크림은 후덥지근한 날씨를 한방에 날릴 만큼 달콤하고 맛있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의 기분을 설명할 수 없는 이 심란함을 한방에 잊게 만드는 맛이었다. 얼굴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쓱 문지르며 먹는 나를 본 성현은 빵 터졌다.


" 그게 그렇게 맛있냐? 그렇게 금세 기분이 풀릴 만큼?"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 얼굴에 손을 뻣어 볼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 맛있네. 달다. 꼭 너 같아."

" 네? 뭐래요. "

" 너 웃을 때 무지 달달하거든. 내 마음. 지금처럼."


" 어 오빠 이런 심쿵 멘트 안 좋아요. 괜한 오해 사요."

" 머 어때? 내 기분이 좋으면 되지. 안 그래?"


" 그러니 괜한 오해 사잖아요. "

나도 모르게 뚱한 표정으로 뒤돌아 차에 올랐다.




' 왜 성현오빠는 자꾸 나를 흔드는 거야. 신경 쓰이게.'


버스에 올라 나는 눈을 감고 양을 세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시끌벅적 얼마를 세었는지 모를 때 어느새 버스 안에는 인파로 가득 찼다. 이제 돌아가는 가보다.


"털썩. "

고개를 돌려보니 어딘지 마음 상한 듯한 표정의 성현오빠가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양쪽 귀에 어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않고 눈을 감았다. 하도 잠들어서 그런가 잠이 오는 것 같은데 잠은 오지 않는다.


이 어중간한 몽환적인 느낌은 뭘까.


차가 휴게소를 지나 한참을 달릴 무렵, 성현오빠의 손이 내 머리를 슬며시 오빠의 어깨로 기대게 밀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가운데 머리를 두고 눈을 감았다. 잠이 쏟아졌다.


눈을 뜨자, 입가에 무엇인가 느껴진다.


'뭐지. 헐. 침. '


고개를 돌리니 성현오빠의 어깨에 침을 흘리고 내가 잠들었나 보다.

'으. 미쳐.'

나는 급히 티슈를 뽑아 살짝 성현의 어깨에 묻은 침을 닦아냈고 내 입가에 침도 쓱 닦아냈다.

' 댄장. 오늘은 왜 이리되는 일이 없는 거야. '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달렸다.

아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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