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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10. 2023

#1-17. 다섯 번째 별

생일 상

" 저 내일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저녁 쏠 테니 같이 저녁 드시죠?"

" 아 휘우씨~.오랜만이네요. 음. 제가 내일은 일이 늦게 끝날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몇 시쯤 끝나실까요?"

" 음. 한 7시쯤 끝날 거 같은데... 너무 늦어서요"


" 괜찮습니다. 저도 일이 끝나면 시간이 그쯤 되겠네요. "

" 그럼 제가 최대한 시간 맞춰서 주차장으로 가겠습니다. "


" 그럼 저희 회사 주차장에서 뵙도록 하죠. "

시간이 조금 늦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녀와 약속을 잡았다. 

나는 내심 설레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는 그녀의 말에 흡족해하며 나름은 기쁨의 세리머니로 손을 휘젓고 있자, 이 부장이 다가왔다. 


" 워. 무슨 좋은 일이길래. 그리 허공에다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야?"

" 아무것도 아닙니다. 퇴근 안 하세요?"

" 해야지. 오늘은 캠핑카 안 가? 요즘은 통 안 가는 거 같네?"

" 날씨가 추워서요. "

"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그래. 작년 한겨울에도 방파제에서 얼어 죽는다고 그리 가자고 해도 죽치고 있던 사람이."


" 나이 한 살이 무섭습니다. 부장님. 몸 생각하셔야죠."

" 몸 생각은 무슨. 요즘 한동안 와이프한테 잡혀 사느라 온몸이 몸살 날 지경인데... 오늘은 술 한잔? ok?"

" 아 안됩니다. 저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 퇴근해야 해서요. 오늘 일 마무리해야 합니다. 먼저 퇴근하시죠. "

" 뭐? 이런 영 섭섭한데? 그러지 말고 딱 한잔만 하자고. 내일 일은 내일 해야지. 제 맛이지. 안 그래?"


이 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익숙한 듯 내 책상 위에 서류들을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이 부장의 손놀림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자리에서 요지부동 떠날 줄을 모르고 죽치고 앉아 있자, 이내 김 빠진 맥주처럼 기운 빠진 이 부장은 조금은 섭섭한 표정으로


" 그래. 알았다. 알았어. 무슨 일인지 몰라도 먼 약속인지는 몰라도. 쳇. 내가 두고 보겠어. 좋은 일 아니기만 해 봐라. 어디. 그럼 난 간다고."


그렇게 퉁퉁 거리며 이 부장은 사무실을 나갔고 나는 이내 책상 위 이 부장이 덮어 두었던 서류를 다시 펼쳐 들었다. 그리고 마치 내일은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내일 이 일들을 절대 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1시간 전 나는 조퇴를 쓰고 근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둘러 시장에서 잡채와 삼색나물, 반찬 몇 가지에 구운 생선을 샀다. 그리고 서둘러 차를 몰아 바닷가 자주 가던 횟집 사장님께 들러 점심때 미리 부탁드렸던 가자미 미역국을 포장해서 차에 실었다. 

전날 밤 나는 잠들기 전까지 부단히 도 메뉴를 고민했다. 미국에서 자란 그녀에게 어떤 생일 선물을 준비할까. 

어떤 생일상을 차려줄까. 


 그녀는 어떤 선물을 받으면 기뻐할까. 

나름은 인터넷 검색도 하고 은근슬쩍 전 달에 생일이었던 여직원에게 남편이 어떤 생일 선물을 주더냐고 물어도 보았지만 그녀는 퉁퉁 대며 해달라는 명품백 대신 즉석미역국을 끓여줘서 그냥 섭섭하지만 본인 손으로 끓인 게 아니라서 나름은 그냥 넘어갔다며 서운 한 티를 내었다.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나는 사이도 아닌 사인데 어떤 선물을 하자니 너무 부담스러울 듯했고 밥을 먹자고 잡은 약속인데 특별한 식사를 하기에는 그 시각에 잡을 만한 식당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오랜 외국 생활에 오히려 한국적인 식사가 그녀에게는 더 그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같이 식사를 몇 번 하며 서우가 감탄했던 식사는 지극히 한국적인 밥상이었고 그런 곳은 가정식 밥상이 차려지는 곳이었기에 한국에 살고 늘쌍 차려 먹는 생일상인 우리지만 서우에게는 특별함이 더해진 식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은 기대 아닌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열심히 출근 준비를 하며 머릿속에 동선을 생각하며 최대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그려가며 단번에 식사를 차려낼 묘안을 그려냈다. 그리고 퇴근과 동시에 서둘러 움직여 서우와 약속한 시간 10분 전에 회사 주차장에 아슬하게 도착했다. 




내심 완벽한 동선이었다고 흡족해하며 주차장 입구로 차를 몰아 들어서는데 건물 현관 앞에 서우가 보였고 나는 너무 놀라 핸드폰을 바라봤다. 분명 약속시간 10분 전이었다. 나는 서둘러 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언제 도착했어요? 전화를 하지 그러셨어요?"

" 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보니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빨리 도착해서요. 혹시 일에 방해되실까 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전화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어디세요?"

그렇게 말하며 서우는 주변을 둘러봤고 나는 전화기를 든 채 차에서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가 전화를 끊으며 내게 다가왔다. 


" 어딜 그렇게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 아 그게 저... 음. 일단 추운데 차에 타시죠. "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차 문을 열자 생선 냄새가 확 밀려들었고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 장 보고 오셨어요? 생선 사셨나 봐요? 풉."

" 헙. 그게... 아. 일단 서우씨 집이 필요한데 집 빌려 주시겠어요?"

" 네?"

" 음. 일단 댁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간 김에 저도 좀 빌려 드리겠습니다. "

나는 그렇게 말하고 차를 몰아 서우씨 동네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아직 빵집 문은 열려 있었고 나는 그곳에 잠시 주차를 하고 서둘러 케이크를 샀다. 

그러자 그제야 서우는 눈치를 챈 듯 웃으며 

" 오늘 생일이신 가보네요. 후훗. 말씀하시지. "

" 뭐. 그렇죠. 일단 내리시죠. "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서우 집으로 향하며 그녀에게 케이크를 주었고 서우는 신이 난 듯 케이크를 들고는 집으로 들어가 식탁에 올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 어 그거 벌써 붙이는 거 아닌데.. 아직 밥을 해야 하는데..."


" 밥요? 밥을 언제 해요. 이렇게 다른 건 다 되어 있는데... 그냥 햇반 데울게요. 기다려 보세요. "

서우는 익숙한 듯 햇반을 돌려 데워 냈고 나는 그 곁에서 미역국을 전기레인지에 올려 보글보글 끓여 냈다. 

그리고 후딱 한상을 차려 내자 어느새 식탁 위에 알록달록 색색의 한국 전통 생일 상이 차려졌다. 그러자 다시 서우는 케이크에 불을 붙였고 초를 세어보더니,

 

" 음 초는 몇 개를 꽂으면 돼요?"

"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몇 개 꽃아 드리죠?"

" 네? 그게 무슨..."

조금 당황하는 서우에게 


" 오늘 서우씨 생일이잖아요?"

" 제 생일요? 음? "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우 앞에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핸드폰의 톡을 보여주었고 톡에는 서우 이름에 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본 서우는 

" 아... 내 생일... 이구... 나..."


순간 나도 모르게 어색해지는 그녀의 분위기에 나름 케이크 옆에 붙어 있던 축포를 빵 터트렸고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 하는... 서우씨.. 생일 축하 합니다. "


내 상상 속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내 품에 안겨 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서우는 두 손을 움켜쥔 채 그대로 돌덩이 마냥 그대로 굳어 있었다. 


" 저 서우씨? 초 다 녺아요. 촛불..."

" 아.. 네. 고마워요. 휘우씨. 후우~"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식사를 했다. 


아니 사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름은 꽤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예상한 반응과 전혀 다른 반응에 어떻게 해야 할지 나조차 감당이 안 되는 상황. 


 이럴 때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고 속을 채운다. 꾸역꾸역 혼자 열심히 맛을 음미해 가며 장 봐온 음식을 열심히 먹어 치웠다. 오늘따라 자주 가던 반찬가게 아주머니께서 서비스라며 더 얹어주셨던 식어 빠진 소불고기가 입에 착착 감겨왔다. 서우씨는 젓가락도 채 대지 않았는데 나는 그것을 싹싹 긁어 밥에 비벼 먹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서우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 맛있어요?"

" 네!. 네? 음... 미안해요. 제가 눈치 없이 다 먹어... 버렸네요. 허허."

" 아니에요. 너무 잘 드셔서 보는 것만 해도 즐거웠어요. "


" 음. 그런 표정이었던 거예요?"

" 네? 그게 무슨..."

나는 그렇게 말하며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서우를 한번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불고기를 밥이 얹어 크게 떠서 한 입에 털어 넣고는 우걱우걱 씹어가며 말했다. 


"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표정치고는 너무 무미 건조해서요. "


" 아... 제가 그랬나요? 미안해요. 마음이 조금... 복잡했어요. 미안해요. 식사 이렇게 차려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


서우의 말에 그제야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 무언가 있었던 거겠지. 





" 사실 이렇게 한국식 밥상을 생일 상을 받아 본 건 처음이에요. 태어나서..."

" 네? 그때 한국 어머니가 계셨다고... "


" 아... 아버지와 결혼하시고는 늘 생일에는 미국식 생일상을 준비하셨거든요. 아버지께서 한국에 계실 때는 고향 생각나시니 한국식이 아닌 미국식으로 차리고 미국에 가서는 어머니께서 이혼하셔서 연락이 끊기고 늘 한국인이신 어머니 생각 안 나게 미국 음식들로 생일상을 차려왔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일상은 생전 처음 받아봤어요. "


" 아...!"

" 한국에서는 이렇게 생일 상을 차리는군요. "

" 아. 전 그것도 모르고 그냥 냅다 다 먹어 버렸네요. 이런. "


" 아뇨. 괜찮아요. 제 이야기를 안 해왔으니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사람임을 실감한 걸요. "

" 전 한국말도 너무 잘하시고 저희 문화도 너무 익숙하게 잘 적응하셔서 미국에서 오셨다는 걸 자주 잊어버려요. 실례했어요. "


" 괜찮대도요. 한국말을 잘한 건 전에 사귀었던 친구 외조부가 이민 1세대에 부모님 중 어머니가 한국 분이셨고 저와 처지가 비슷해서 둘이 있을 때는 한국말만 썼었고 그 친구가 떠나고 나서는 더 악착같이 한국말을 연습했어요. 네이티브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 문득 그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낯선 이국 땅에서 익숙한 한국땅에서 마치 이방인처럼 살아온 그녀. 


어디를 가도 어디에 있어도 이방인어야 했던 그녀. 본인을 위한 생일 상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는 생일 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런 그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받쳐 가며 그렇게 힘든 세월을 오로지 맨몸으로 버텨내고 있었다니.

 밥을 열심히 먹던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그제야 그녀는 숟가락을 들어 미역국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물끄러미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 그건 가자미 미역국이라는 건데 요 앞 바닷가 횟집에 사장님이 기가 막히게 끓이시죠. 제가 집에서 끓여도 절대 그 맛을 낼 수가 없어요. 얼마나 진국을 끓이시는지. 한국에서는 애들을 놓으면 산후에 몸조리하라고 산모에게 그 미역국을 끓여줘요. 어때요? 맛이 진하죠?"


" 음. 생선국인데 맛이 깊은 맛이 나네요. "


" 아 그리고 거기 앞에 나물도 먹어봐요. 색색에 나물들이 계절 별로 상징하는 바도 있을 테지만 건강한 밥상을 생각해서 보통 나물을 생일 상에 올려요. 그리고 생선도..."


 이것저것 귀동냥 삼아 주워들은 것을 서우에게 설명하자 그녀는 내가 설명해 주는 반찬들을 요리조리 밥 위에 올려가며 하나씩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제법 밥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이내 다시 숟가락을 들어 열심히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차를 몰아 성류굴로 향하는 길에 그녀는 내게 말했다. 

" 오늘 식사 너무 감사해요.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기대도 안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뜬금없이 행동한 것 같아 되려 죄송해요. "


" 아뇨. 서우씨 상황을 몰랐으니 제가 더 죄송해요. 만약 저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조금 황당했을 것 같아요.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이상했을지도 모르고요. "

" 억지로 이해해주시려 하지 않으셔도 돼요. 살아온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그런 걸요. 그래도 오늘은 정말 고마워요."

" 음. 한국말로 이럴 때 우리는 감동이라고 합니다. 하하. "

" 그럼 다음에는 감동이라고 말할게요. "


" 저 서우씨. 여쭤 볼 말이 있는데요."

" 네. 물어보세요."


" 음. 이런 말이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어쩌면 말이죠. 진짜 본인이 몰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까 불현듯 들어서요."


" 뭐가요?"

" 저. 그냥. 든 생각인데.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거죠?"


나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왜 그런 뜬금없는 의문이 든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 순간 그녀에게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과연 그녀는 알고 있을까. 

저 말의 대답을 본인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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