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위에 올려진 커피를 내려 놓으며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턱에 손을 괴며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 꼭 그래야만 할까요? 애초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할 수도 있는데 구지 잃지 않아도 알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크림이 듬뿍 올려진 커피를 들고는 한모금 머금고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뻣어 그녀의 입술에 묻은 크림을 닦으려 하자 그녀는 창밖을 바라본 채 테이블에서 냅킨을 들어 입술에 묻은 크림을 닦아냈다. 나는 민망함에 손을 재빠르게 내렸고 어색함을 달래고자 커피를 들어 다시 마셨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바라보더니 풉하고 웃었다. 나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우를 바라봤다.
" 그저 본능적으로 베푸는 마음과 어떤 마음이 개입된 차이는 또 다르죠. 하지만 어쩌면 그걸 애써 구분하려 드는 게 오히려 조작된 건 아닐까란 생각이 가끔은 들어요. 문득."
" 베푸는 마음이라...?"
" 친절이죠. 그저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들이 무심결에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그런 행동이 때로는 어떤 순간에 선행인데 어떤 순간에는 그 행동의 결과로 인해 마치 의도된 행동으로 비춰져서 다른 마음으로 투영되는 것 같은 결과... 그리고 오해. 그 사이에 인간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거죠. "
그녀의 말에 나는 커피를 내려놓으며,
" 어찌 보면 아슬 아슬한 줄다리기 같은 마음일 수도 있죠. 어쩌면 직접적인 표현을 못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감정이 전혀 없는 상대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저 연민, 진심으로 전해지니까요."
" 그럼 방금 휘우씨의 손은 친절이었나요. 동정이었나요? 아니면 다른 마음이었나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순간 당황하였다.
내 행동은 본능적이었고 어떤 판단을 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산책을 하며 건넸던 코트는 그녀를 배려하려던 내 마음이 오로지 담긴 행동이었지만 글쎄.
" 음. 글쎄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라 뭐라 어떤 마음이 이끈 행동이라고 말하기는 좀..."
" 그거 아세요? 휘우씨? 휘우씨는 가끔 감정이 드러나는 행동을 할 때는 말 끝을 흐려요. 후훗. "
서우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주었던 코트를 또다시 어깨에 걸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서둘러 자리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자, 그녀가 핸드폰을 점원에게 건넸다.
" 여기 계산은 제가 할게요. 저녁은 제가 얻어 먹었으니. 잘먹었어요. "
그녀의 집앞에 도착하자 나는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늦은 새벽까지 잠을 뒤척이던 그녀가 생각났다.
" 오늘 혼자 주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 저야 늘 혼자 지내는 사람인 걸요. 괜찮아요. "
" 어제 늦게까지 잠을 설치시던데 박경장도 오늘 그리되서 걱정이 좀 되어서요. 필요하시면 같이 있어 드릴까요?"
" 아뇨. 괜찮아요. 이런 일에 익숙하니까. 늦은 시각인데 감사해요. 어서 들어가 보셔야죠. "
" 그럼 잘 쉬시고 또 뵙죠. "
나도 모르게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며 후회가 밀려들었다. 우리가 다시 볼 일이 있을까.
돌아온 차안에서 한참을멍하니 핸들을 붙잡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아파트 불이 켜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차를 몰아 숙소로 향했고 숙소에 도착하고서도 제법 차안에 앉아 있었다.
마치 그녀와 만남이 마지막인 것만 같은 날.
미련처럼 남은 하루. 왜 난 그녀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난 그녀에게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주말에 보자고 말하지 못했을까.
머릿속에는 내가 남긴 마지막 멘트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울리고 있었다. 어지러운 머릿 속을 비우려 참았던 담배를 꺼내 차에서 내려 한대 피우고 숙소로 향해 씻고 자리에 누어 나는 서둘러 잠을 청했다.
하지만 머릿 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곁에 있듯 생생히 그려졌다.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그녀의 외모는 어느새 처음 만났던 그 긴 검은 생머리와 달빛에 비췄던 검은 눈동자와 하얀 생크림이 묻은 핑크빛 입술로 더 선명하게만 다가왔다.
" 과장님? 결재 아직 안하셨어요? 이과장님?"
정대리가 부르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조금은 다급해 보이는 정대리가 난처해 하며 내 앞에 서있었다.
" 응?"
" 아까 말씀드렸는데 저 내일 연차라고...결재해주셔야죠."
" 음. 이런 건 미리 말해야지. 내일 연차인데 오늘 결재 올리면 어떻게."
" 지난주 말씀드렸습니다만. 날짜가 언제가 될지 몰라서 정해지면 알려드린다고 하니 이과장님께서 그때 그러셨잖아요. 전날 올려도 된다고. "
" 내가 그랬나? 미안. 내가 깜박했나보네. 알았어. 일단 지금 결재했으니까. 부장님께 보고 드리고 잘 다녀와."
생각해 보니 정대리 말이 맞았다. 정대리가 분명 지난 주에 목요일이나 금요일부터 티켓팅을 하는대로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다.
부모님 칠순 기념 잔치로 형제 자매들이 다 모여서 가는 거라 날짜 잡기가 애매하다고 하여 내가 오히려 날짜는 게이치 말라며 언제든 연차를 쓰라고 까지 말해줬었다. 처음 가는 해외 가족 여행에 회사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히 다녀오라고 그렇게 말해놓고 되려 내가 오늘 이렇게 행동했으니 이상할만 했다. 다시 생각해도 그런 정대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정대리에게 조금은 시간적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다.
내가 그 시기에 그렇게 못했기에 정대리에게 만큼은 회사일로 가족에게 소홀할 일 없도록 그렇게 잔소리를 해댔는데...
정작 내가 정신이 딴데 팔려 있으니 마음과 달리 행동은 엉뚱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정대리에게 케익쿠폰을 보냈다. 자녀들과 함께 먹으라며.
그리고 핸드폰을 바라보자 문득 보이는 서우씨의 생일을 알리는 이모티콘.
그녀와 그렇게 헤어지고 한달이 지난 지금 이렇게 뜬금없이 연락을 해도 되려나.
하지만 그 이후 그녀와 이렇다할 연락할 거리를 아무리 찾아봐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녀와 주고 받은 톡에는 잘 지내느냐는 인사 몇마디와 즐거운 하루 보내라는 인사, 저녁은 먹었느냐는 인사 몇마디. 그리고 매번 맞추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야근을 하고 있거나 늘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일이 특수한 업무고 나와 접점이 없기에 나는 혹여 내가 방해될까 걱정에 바쁜 그녀를 배려해서 되려 약속을 잡지 않고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서우씨는 주말에도연락이 없었다. 그저 주말을 잘보내라는 톡이나 서울에 간다는 톡정도만 오갈 뿐.
그래서 고민을 하다 나는 결국 내일이 서우의 생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