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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rightsea Oct 23. 2023

#1-28. 다섯 번째 별

처음은 그렇게

그녀와의 하룻밤. 그 밤의 여운은 제법 길게 나를 괴롭혔다.

눈을 감으면 마치 그녀가 바로 곁에 있는 듯 그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고 눈을 뜨면 현실이 마치 몽환적으로 느껴지며 괴리감이 들었다.

" 이 과장님~~"


정대리가 부르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정대리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내게 살며시 선물을 내밀었고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 아 어서 받으세요. 어디다 그렇게 넋을 놓고 계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들어 선물을 올려주고는 이내 자리로 돌아가서는 미어캣처럼 목을 빼서는 내게 넙죽 인사를 건네 왔다. 손에 들린 선물을 풀어보지도 않고 나는 얼른 그것을 책상 서랍에 넣고 고맙다는 목례를 건네고


" 정대리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지? 그럼 점심때 식사 요 앞에 나가서 같이 맛있는 거 사 먹읍시다. 내가 사지."

그렇게 말하자 정대리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하면서 책상 위를 정리했다. 그런 정대리를 곁에서 바라보던 허사원이


" 어머 두 분 이서만 나가서 드시는 거예요? 무슨 비밀 이야기 나누시려고요?"

라며 정대리 의자를 툭 치며 익숙하게 정대리에게 어깨동무를 건네자, 이내 얼굴이 붉어진 정대리는


" 허은설 님 직장에서 이러심 오해 사요. 에잉. 잘 아시면서."

그렇게 애교 있고 넉살 좋게 받아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사무실을 나갔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사무실문만 바라보는 허사원을 스치듯 지나쳤고 허사원은 내 뒤통수에 대고,


" 흐음. 요즘 이 과장님 이상하시네? 바람이라도 나셨나?"

라며 마치 들으라는 듯 말했다. 그러자 김대리가 냉큼 일어나 허사원에게 가서는

" 은설 씨 저랑 같이 식사하러 가시죠. 오늘은 회사 구내식이 영 별로라 요 앞에 초밥집 새로 오픈했던데 제가 그리 안내하죠. "

그렇게 말하며 허사원을 일으켜 세웠다.




" 사무실 분위기가 여행 다녀온 사이 많이 묘해졌네요?"

식사를 끝내고 근처에서 커피를 사서 돌아서는데 정대리가 말했다.


" 뭐가?"

나는 커피를 받아서 입에 물고는 정대리를 바라보자,

" 허은설 씨요. 예전과 달리 좀 뭐랄까. 분위기가 좀 많이 야릇하게 바뀐 거 같아요. 거기에 김대리는 더 들썩 거리고... 뭐... 과장님도 좀 달라 보이고..."

" 내가?"

" 네. 아까도 불러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시고. 뭐 일이 있으셨어요?"

" 아니. 일은 무슨. 회사일이야 빤하지. 뭐. 가을이니 허사원도 가을 타나보지."

" 그런가. 허기야. 이제 그 나이쯤이면 혼자 지내기는 지겨울만하겠죠?"


그렇게 말하는 정대리를 바라보며 나는 훗 하고 웃었다. 하지만 머릿 한 귀퉁이에는 계속 서우가 아른 아른 맴돌고 있었다.

" 이 과장님. 여자 생기셨어요?"

" 으음? "

내가 당황하며 커피를 먹다 말고 정대리를 바라보자 정대리는 씩 웃으며 못 본 척 커피를 한 모금하며 눈알을 굴렸다.


"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이제 뭐 저도 사무실에 한창 일할 나이 되었으니 언제든 부려 먹으시면 됩니다. 인사과에 친구가 뒤뜸 하더라고요. 이 과장님 이혼하셨다고. 괜찮은 사람 같은데 소개 좀 시켜달라고. 저 혹시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


" 아 뭘. 그런 사생활을 굳이 알려고 그래. 뭐. 혼자도 지낼만하니 굳이 신경 안 써도 돼. 마음만. 응? 마음만 고맙게 받을게. "


나는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들어 보이고는 무안해하는 정대리를 뒤로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왔다.

도대체 사무실에 비밀이란 존재하긴 하는지. 어떻게 인사과에 있는 사람이 그런 개인 정보를...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사생활이긴 하지만 인사 정보에서 기혼과 미혼은 세금부터  다르고 급여에서도 차이가 나니까. 알고는 있지만 그래. 그렇지만 마음은 영 좋지 않았다. 기업의 이윤에 이런 개인의 정보까지도 포함이 되는 사항이다 보니. 내 처지가 확 와닿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고작 한낯 직장인일 뿐.




핸드폰을 보자, 목요일이었다.

그래 이틀은 정말 나도 일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 나오기 바빴고 집에 도착해서 그 짐을 풀기 바빠 정신이 없었다. 수요일은 인터넷이며 세탁기며 집에 설치하러 오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시간이 또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도 나름은 머릿속에 그래도 연락은 오겠지란 생각보다는 기다리다 보면 답이라도 주겠지란 마음이 더 컸다.

 아니 그녀의 그 보드랍던 살결이 손 끝에 느껴지던 순간을 잊기 싫었고 그날 밤의 기분을 좀 더 간직하고 싶었다. 함께 한 순간에 그 편안함과 그녀를 채워줄 수 있었던 그 마음이 위로가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그 밤은 꽤나 내게 면역주사를 맞은 것 마냥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점심때쯤이 되자, 식욕이 떨어져 결국 점심을 거르고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뉴스를 뒤지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더 다른 소식은 없는지 급기야 CNN뉴스에 기사까지 찾아보며 국내 기사까지 찾아가며 보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소식은 없었다. 아니 마치 감추려고 한 것 마냥 아무 일 없듯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급기야 이러다 그녀마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 초조해졌고 나는 전화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 여보세요?"

" 저 고객님 오늘 차 출고 날이라 말씀드렸는데 아직 안 오셔서 연락드립니다. "


서우일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내차.

 나는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1층에 내려가자 막 서우가 입구에서 전화를 하며 나를 바라봤다.


" 여긴 어떻게?"

" 아 퇴근길에 같이 가려고 전화하고 있었어요. 통화 중이길래..."

" 안 그래도 차가 나와서 가지러 가는 길이었어요. "


" 잘되었네요.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

서둘러 그녀의 차를 타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 그녀는 붉어진 볼을 쓰다듬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  잘 지냈어요?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서둘러 차를 몰았고 나는 급히 네비에 차를 인수받기로 한 곳으로 주소를 찍었다. 그녀와 그간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해 차 인수를 받사인을 하고 나니 문득 그녀와 헤어져 가야 한다는 사실이 뒤늦게나마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올랐다.

" 서우 씨. 저녁은 먹었어요?"


" 아 같이 먹으려고... "

" 그럼 우선 서우 씨 차 집 앞에 세워두고 같이 움직여요. 오늘은 차도 나온 김에 같이 드라이브도 하죠. "

" 그럴까요?"




제법 먼 거리긴 했지만 나는 차를 몰아 강릉으로 향했다.


썬크루즈 호텔 앞 있는 델라루주에 가서 어두 컴컴하게 내려앉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함께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바쁘게 지내온 그녀의 일상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 사무실에서는 미국 내 소식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인데 다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미국 내 소식통에 따르면 아마도 이번 일이 지난번 한국에서 있었던 박경장 일과 연관되었을까 봐 조사를 하는 중이란 말이 나오면서 양국 간 긴장 상태로 한국 내 외교소식 통이 어제 미국으로 출국한 걸로 알아요. 본부장님도 원래면 출장 가시려다 보안 상의 이유로 취소하셨거든요.  

 중요한 건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오히려 외국에 알려지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미국 내에서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언론에 먼저 노출이 된 바람에 어떻게든 핑곗거리는 필요한 상황이고 그런 부분에서 한국의 대외적 문제가 부득이 이용당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자칫 잘못되면 국제 분쟁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라 긴급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


나는 서우의 이야기를 듣자 내심 서우의 근황이 걱정되었다. 그녀는 과연 안전할까.


" 서우 씨는 괜찮은 거예요? 미국에서 있다 왔고 사수도 그 자리 있었던 것 같다면서요. 그럼 누구보다 위험한 상황이지 않아요?"


" 만약에 미국에 있었다면 그랬겠죠. 하지만 다행히 제가 국내 입국한 덕분에 저는 그런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죠. 사수는 엊그제 그 분의 아내와 통화를 했어요. 다행히 병원에 입원 중이고 의식회복 중이란 소식을 들었는데 크게 다치거나 한건 아니라고 하니 기다려 봐야죠. "


" 그 아내분은 믿을 수 있는 분인가요?"

" 그 사람은... 네."


그렇게 대답하는 서우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왠지 슬프기도 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


" 괜찮아요. 말하기 힘들면..."

" 사실..."


그리고 그녀는 한참 뜸을 들이다,

" 사실 같이 근무할 때 사수와 전 아내가 이혼 소송 중이었어요. 사수가 너무 일에만 빠져 있어서 이혼하려고 했다더군요. 저는 그 사람이 유부남인 줄 몰랐었어요. 미국에서는 굳이 물어보지 않거든요. 잠시동안 그 사람의 그 따스함에 흔들린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가 기혼자인걸 알고 그리고 제가 처한 상황이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아니였기에 그사람 마음을 알고는 모질게 했어요. 그랬더니 그 아내가 찾아왔더라고요. 자신은 괜찮으니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행복해져도 된다면서. 후훗. "

" 그... 래서... 요?"


" 사실 좀 놀랐어요. 그 정도로 그의 아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줄 몰랐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그를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동료로 선배로 존경하고 따랐으니까.

 

 그때만 해도 제게 전 남자친구의 흔적이 너무 컸었기에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을 받아들이기는 너무 벅찼어요. 제가 힘들어하니 곁에서 보며 그 사람은 되려 챙겨주려 했었고 그런 마음에 잠시나마 혼란스러웠지만 그 아내를 보며 깨달았죠.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란 사실을. 그녀에게 그 사람의 공백은 너무 컸어요.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그래서 사수에게 말했어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어쩌면 인생에서 당신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그리고 당신은 그런 부분에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고요. 그리고 한동안 저는 대학에 출강하고 현장에서 떠나 있다가 한국으로 들어왔고 그 사람은 아내와 재결합을 했죠. "


" 서우 씨 덕분에 그럼 잘 된 일이 잖아요.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근심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사실 그래서 더 휘우씨를 밀어 내려했던 거예요. "


" 왜요?"


" 휘우씨가 주는 그 온전한 사랑. 제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저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인데 되려 휘우씨를 위험에 빠뜨리는 건 아닌지... 당신에게는 어쩌면 따스한 집에서 행복하게 퇴근한 당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평범한 사람이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수도 없이 고민이 들었어요. 당신의 따스한 품이 그리울수록 평범치 않은 제 일상이 오히려 당신을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아니까. "


서우는 그렇게 말하며 와인잔을 들어 속이 타는 듯 와인을 넘겼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말없이 붙잡았다. 그리고 내 가슴으로 끌어당겼고 그녀는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봤다.

" 서우 씨. 누군가를 만나는 건 결코 평범해질 수 없어요. 혼자이던 삶이 둘이 된다는 건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걸요. 혼자일때 마냥 무료하기만 한 일상도 두 사람이 함께 하 새롭고 특별한 순간이 되는거죠 . 왜냐면 우리가 함께처음이니까요. 이런 사소한 것조차도. "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팔을 더 깊숙이 끌어당기며 그녀에게 몸을 어 머리를 감싸며 입맞춤을 했다.


" 그저 이런 입맞춤도 당신과 함께는 처음인 순간이고. 이곳도 당신과는 처음이니까요. 당신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제 인생의 처음이라 다 소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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