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델루나 Jan 11. 2016

공주필지-2

(공동체주거를위해필요한지식)

요즘 '저성장 시대'라는 말을 듣는다. 말 그대로 기준금리 1% 경제성장률 2%로서 경제의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는 시대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더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다른 경제 전문 책들을 추천한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왜 '같이'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 지금의 경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후려쳐서(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자주 쓰는 용어다 ㅋ) 이야기해보자 한다.


우선 FRB,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요즘 많이 들어본 용어이지만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얘네들은 미국의 금융에 대한 막강한 권력이 있다. 첫째는 화폐를 찍어 낼 수 있는 것과 둘째는 금리(이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능력은 통화량을 늘릴 수 있는 것이고, 두 번째 능력은 통화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경기가 침체되면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를 낮춰 수출과 투자를 높이고 경기가 과열되면 통화량을 줄이고 금리를 높여 투자 과열을 낮추고 통화가치를 높여 물가를 안정시킨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건 어디까지나 미국'만'을 위한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말하는 소위 '외화 보유고'의 대부분의 통화는 '달러'이기 때문에 그들이 금리를 높이고 내리고의 영향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미국에 득이되는 것을 위해 다른 나라가 어떤 피해를 입던지 그들은 '관심'없다. 다만 경제라는 것이 어느 정도 서로 맞물려 있기에 그들이 '신경'을 쓴다는 것이지 그들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금리를 0%로 만들면서 자가 회생을 추구한다. 그 덕택에 미국 중앙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대한민국 같은 다른 나라들은 그만큼 낮은 금리에 달러를 빌리고(한국은행) 그 빌린 달러를 시중은행에 풀고, 그 은행들은 이 돈을 대기업에 빌려주면서 그 사이의 이자를 통해 먹고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연준(연방 준비 위원회)이 금리를 높인다고 했을 때 돈을 빌렸던 우리나라 은행은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고스란히 서민의 가계부채를 높이게 된다. 올리지 않으면 안 되냐고? 그러면 원화에 투자했던 외국 투자자들이 바로 빠져나가 정말로 '시장'이 붕괴된다! 금리를 높인다는 것은 물어야 할 이자가 많아진다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대출을 잘 안 하려고 하고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경기가 침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대출을 잘 안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부동산의 부의 축적을 위한 투자로 보는 경향이기에 은행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집을 구입한 뒤, 그 집에 세를 놓는 방식으로 부를 늘려갔던 패턴이 이제 서서히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듯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집값은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내 집 마련의 꿈은 그리 쉽지 않다. 내려가더라도 큰 폭으로 내려갈 순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 부동산 관련 책을 참고하시길)


거기에 요즘은 금리가 낮은 탓에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되어 가고 있다. 금리가 오르더라도 부담금만 늘어나는 것이기에, 집주인들은 더 이상 전세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월세로 전환된다는 것은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높아져 우리 같은 봉급쟁이들이 내 집 마련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물가는 오르고, 소득 대비 주거 비율은 높아져 가면서 내 집 마련이 힘든 상황과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에 대한 욕구는 높아져만 간다. 이러한 장기 불황 속에서 집이나 차와 같이 지출이 커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부분보다는 비록 가격은 비싸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금액으로 '사치'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스몰 럭셔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과거 우리 부모 세대들은 적게는 2~3년 길어도 5년 안에 내 집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이후에도 늘어나는 안정적 소득으로 인해 집 장만 이후에 나머지를 누리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겠지만, 현재의 소득 증가율과 부동산 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좀 '더' 스몰 럭셔리한 '무언가'에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집에 살순 없을까?

하지만 이것으로 괜찮은 걸까? 이러한 스몰 럭셔리의 속성에는 "'한때'라도 즐겁다!"라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하지만 이것은 술이나 마약과 같아서 그러한 만족이 지속적이지 못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이러한 것들에서 찾는 위안은 극히 한순간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과소비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의 삶이 만족스러우려면, 우리가 사는 '공간'자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같아야 한다. 실컷 화려한 '경험'을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어두 컴컴하고 좁디좁은 방에 살림살이를 가득 채워져 숨이 막힐 것 같은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전에 느꼈던 행복마저도 신기루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공간을 '소유'하기에 현실적으로 무리가 많다. 그렇다면 소유에서 조금 양보해서 '공유'를 한다면 어떨까? 물론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나는 이 가능성을 '공동체 주거'를 통해 찾으려고 한다. 다음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정서적인'이유를 통해 왜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지 말하고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주필지-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