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차 없이 못사는 동네입니다. 이십 몇 년 전 처음 뉴욕에 갔을 때, 빅 애플(Big Apple : 뉴욕의 별칭)은 예외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지하철이나 노선버스가 그물망처럼 촘촘했어요. 맨해튼이 워낙 번잡하기 때문이지요.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고 진입할 경우 엄청난 정체와 주차 전쟁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니 보통 뉴욕사람들은 예외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런 초밀집 메트로폴리스(도심이 협소하고 관광객들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나 시카고도 비슷)를 제외한 미국 내 대부분 지역은,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자가용 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이기 힘든 환경입니다. 땅 넓이 하나야 어디 내놔도 부럽지 않은 텍사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내가 사는 오스틴의 경우 메트로(Metro)라 불리는 공영버스와 시내 중심부를 순환하는 오스틴대학(UT로 통칭) 셔틀버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운행노선이 매우 한정적이에요. 배차 간격이 뚝뚝 떨어진 20-30분씩인데다 무엇보다 시간을 잘 안 지키거든요.
오스틴 도착 첫 날은 조카 집에서 잤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도시 북부에 얻어놓은 우리 아파트에 도착한 직후부터 차가 없으면 어떤 존재가 된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했지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큰 슈퍼(HEB)가 있었지만 그 밖의 장소에는 차 없이는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겁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미국은 중고차 거래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답니다. 개인 간 거래도 간단하기 그지없어요. 쌍방이 가격합의를 하고 기존 자동차소유증명서 들고 DMV(교통국: Division of Motor Vehicles)에 가면 됩니다. 등록세(차량 가격의 8퍼센트 정도)를 내고 싸인을 하면 금방 차량 등록이 되고 번호판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구입한 차를 몰고 나오면 끝. 며칠 후 새로운 자동차 등록증(title)이 집으로 날아오면 법률적으로도 차 주인이 완전히 바뀌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처럼 간단한 절차에 앞서 황당무계 우여곡절을 경험했습니다. 오스틴에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 3시간 정도(300킬로미터) 떨어진 대도시 댈러스(Dallas). 암트랙(AMTRAK : 미국 전 지역에 걸쳐 여객철도 운송업을 하는 준공영 기업) 기차를 타고 그곳의 한인 딜러에게 중고차 사러 갔다가 곤욕을 치른 겁니다. 이 사건은 동포 사회의 적나라한 맨얼굴을 드러내는 경험이기도 했어요.
월세 얻은 아파트에 짐 풀자마자 차량 구입 정보를 열심히 수집했지요. 오스틴에서 가장 활발한 한인 커뮤니티는 오스틴대학 한인학생회(KSA) 홈페이지인데 적당한 대상이 나타나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우연히 댈러스 한인커뮤니티 홈페이지를 서핑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
겉으로 볼 때 쓸 만한 차를 하나 찾은 겁니다. 토요타 캠리 2007년식. 무슨 무슨 자동차라는 상호 아래 한인딜러 전화번호가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거기까지 가서 차를 구할 수야 있겠나 싶은 생각에, 절반은 재미로 절반은 호기심으로 버튼을 눌렀지요.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전화를 받는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 사이트 보고 전화했다니까 엄청 나긋나긋 세일즈를 시작합니다. 내놓은 가격에서 디스카운트를 많이 해주겠답니다. 그냥 전화를 해봤고 지금으로서는 댈러스까지 갈 방법이 없다는 말에 즉각 튀어나오는 답변. 오스틴까지 대절택시를 보내주겠다는 거예요. 택시비용이 300달러인데 그것도 자기가 부담하겠다면서!
그때 낌새를 알아챘어야 했는데. “배려는 감사하지만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우아하게 물리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아직 시차 적응이 안돼 머리가 어질어질한 상태였다는 것. 그렇게 어버버버 상담에 끌려들어가버렸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불운이었어요.
전화 통화를 나눈 다음날 조카네와 오스틴 남쪽에 있는 토요타 자동차 공식딜러를 찾았습니다. 미소가 순박한 50대의 여성딜러를 만났지요. 달라스에서 이런 거래요청이 있었다고 차량 연식과 가격을 말해줬습니다. 뺨이 발그스레 통통한 금발의 딜러 왈, Very sweet!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나라면 그쪽과 거래를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제일 못 믿을 두 직업이 중고자동차 딜러와 변호사라고들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기 짝이 없는 딜러를 만난 게 나의 두 번째 불운이었어요.
아무리 어질어질한 머리지만 그래도 택시비까지 받고 댈러스 갔다가는 코가 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터넷을 열심히 검색하니 오스틴과 댈러스를 오가는 암트랙 기차 노선이 있기는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기차 타고 부산에서 수원까지 거리를 가서 차 사는 건 힘들겠다 싶어, 구입 포기하겠다고 딜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 부른 가격에서 무려 1,500달러까지 깍아주겠다는 게 아닌가요! 안 그래도 sweet한 가격인데… 그리고는 아침에도 전화, 점심에도 전화, 저녁에도 계속 끈질기게 전화를 계속하는 겁니다.
이러니 설득에 질 수밖에요. “그래 천천히 열차 밖 풍경을 구경하면서 이웃도시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돌아올 때는 구입한 차를 타고 오면 되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마 미국 땅에 처음 발 딛은 동포에게 사기야 치지 않겠지, 순박무지한 생각을 한 것이 나의 세 번째 불운이었어요.^^
드디어 차를 사러 떠나는 날 아침. 암트랙 역까지 택시를 불렀는데 연결이 여의치 않더군요. 이것도 경험이다 싶어 20여 킬로 떨어진 기차역까지 버스를 한번 타보기로 했습니다. 오전 7시 20분. 아파트 현관문을 여니 뿌연 비안개가 내립니다. 그렇게 나선 길이 역까지 무려 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승용차로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는데. 갈아타는 연결지점을 헛갈려 계속 엉뚱한 버스를 탔던 겁니다. (누가 부산 촌놈 아니랄까봐)
그 와중에 주로 히스패닉과 흑인으로 이뤄진 육체 노동자들의 생생한 출근 장면을 목격했지요. (텍사스에서 버스 타고 이 시간에 출근을 할 정도면 중고차 한 대 구입할 돈조차 없는 최하층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차를 구한 다음부터 버스 탈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역으로 향하는 2시간 내내 경험한 거지요.
피곤에 절은 남루한 입성의 사내와 여자들이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 특히 열대여섯 남짓한 멕시칸 소녀가 기억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수 십 분 동안 누군가와 애타게 통화를 시도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버스 운전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
착하고 넉넉하게 생긴 중년의 여성운전사가 버스 승객 중에 누구 스페인말 하는 사람 없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늙수그레한 노동자풍 아저씨가 대신 전화를 걸어줍니다. 몇 군데나 전화를 했는데 결국 소녀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남의 나라 말을 거의 못하는 이 소녀는 어디서 왜 텍사스로 온 것일까요. 그리고 안개비 내리는 아침, 대체 누구에게 저렇듯 애타는 전화를 시도하는 것일까요.
정작 문제는 소녀가 아니었고 저였습니다. 구불구불 허름한 주택가를 달리고 다시 강변을 거슬러 올라가는 예기치 않은 버스 여행. 마지막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1킬로미터쯤 떨어진 콜로라도 강변 근처에 기차역이 있답니다. 그런데 돌아다니는 택시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숨이 턱에 닿게 빠른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그렇지만 이러다가는 도저히 기차 출발시간에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택했지요. 백주 도심에서 히치하이킹을 한 겁니다. 대학원생 정도로 보이는 커플이 모는 낡은 폭스바겐이 길을 거슬러 올라옵니다. 양 손을 마구 흔들어 차를 세웁니다. 오스틴 기차역을 못 찾았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미안한데 좀 태워줄 수 없겠니? No problem이란다. 거뭇거뭇 턱수염을 기른 청년이 하얀 날개 단 라파엘 천사로 보입니다.
차가 도착한 곳은 기차역 정문이 아니라 철망으로 가로막힌 뒤쪽 편(사진 왼쪽). 개찰구로 가려면 찢어진 철망 사이 개구멍을 통과해야 합니다. 어깨와 허리 잔뜩 웅크리고 개구멍을 통과. 철길을 뛰어넘고 화물열차 사이를 빠져나와 달리고 또 달립니다.
그렇게 도착한 것이 기차 출발 시간 딱 1분전! 온몸을 던져, 막 열차에 오르려는 켄터키프라이드 할아버지 닮은 차장(사진 오른쪽)을 붙잡습니다. 숨이 턱에 찬 목소리로 부탁합니다. 표를 아직 안 끊었으니 출발을 부디 늦춰 달라고. 총 길이가 백여 미터는 넘는 2층 암트랙 열차. 그 거대한 기차가 우리 때문에 예정시각보다 3분이나 늦게 출발한 사연입니다.^^;;;
그러나 아직 모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박2일간의 댈러스 여행, 그 파란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