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에 창립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는 런던의 오케스트라 중 가장 오래된 세계적인 명문 악단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콜린 데이비스, 앙드레 프레빈, 마이클 틸슨토마스 등이 악단을 이끌었고 곧 베를린 필하모닉을 떠나는 거장 사이몬 래틀의 영입에 성공한 주인공이 바로 LSO이다. 두 명의 현 수석 객원지휘자는 다니엘 하딩과, 최근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음반 작업을 했던 자난드레아 노세다이다. 위에 언급된 지휘자들의 수준을 축구 선수로 비유하자면 펠레, 마라도나에서 시작해서 지단, 앙리, 루니, 메시, 호날두, 네이마르와 같은 오늘날 최고 권위의 선수들이 거쳐 갔거나 현재 뛰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황금계보라는 말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유럽 고전음악의 뿌리라고 한다면 LSO로 대표되는 영국은 엄청난 화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LSO의 수장으로 20년 넘게 일했던 클라이브 길린슨은 원래 LSO의 첼로 연주자였다. 워낙 전문 예술단체의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악단의 어려움에서 시작되었다. 30여년 전 LSO가 극심한 재정난을 겪게 되자 악단의 대표였던 책임경영자가 사임하게 되면서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리 명문 오케스트라라고 하지만 풍전등화와 같은 현실 앞에 악단의 대표를 맡으려는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파산한 악단의 첼리스트가 되어 버린 길린슨은 ‘3개월’ 조건으로 첼리스트와 책임경영자로 두 가지 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약속된 시간이 거의 흘렀을 무렵 길린슨은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단체를 이끌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 정식으로 악단의 대표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거절한 후 다시 첼로 연주자로 돌아갔다.
시간이 흐른 뒤 길린슨은 악단으로부터 책임경영자 제안을 다시 한 번 받게 되었다. 장고 끝에 그는 LSO를 이끌어갈 대표직을 수락한 이후 20여 년 동안 LSO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 세계 최고 악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그는 2005년 카네기홀의 영입 제안으로 뉴욕으로 이주하여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홀의 예술감독 겸 책임경영자로 활동하며 카네기홀은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예술 기관 및 단체는 돈을 ‘쓰는’ 곳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자 폭을 줄여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동시에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 관련단체는 누군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재원 확보를 위한 후원자가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더 긴급한 필요가 있는 다른 단체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늘 직면한다. 아프리카 오지에 깨끗한 물과 음식,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세우는 일에 비교하자면 음악은 사치와 낭비처럼 보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지원이 더 요구되는 이유된다.
그러나 이런 모든 난관 속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가 한 번에 무너져 버리기도 하는데, 바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지원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정부와 기관의 무책임한 상황을 만날 때다.
올해는 작곡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대표인 플로리안 리임의 표현대로 윤이상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세계 음악 지도에 처음 올려놓은 인물이다. 독일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곳에서 그의 100주년을 기리는 음악회들이 예정되어 있는데 정작 모국인 한국의 사정은 그렇지 못해 보인다.
윤이상 재단은 지난 2005년 문체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친북으로 낙인 찍힌 윤이상의 이념 논란 때문에 최근 지원이 중단되었다. 윤이상국제콩쿠르는 국고지원평가에서 늘상 최상위권에 있던 문화행사였지만 지난 2016년부터 정부의 지원이 끊겼고, 경상남도 역시 시와 재단에 아무런 협의 없이 올해부터 도비 지원을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통영국제음악제는 이제 통영시의 예산만으로 치뤄야할 판이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개최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다. 국제적인 음악콩쿠르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던 곳이 경상남도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아니다 다를까, 윤이상재단은 이번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