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ny Nov 30. 2017

말러에 열광하다!

2016년 11월 말, 구스타프 말러의 두 번째 교향곡 필사본 악보가 영국 런던 경매에 등장했다. ‘부활’이라는 부제로도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이다. 미국의 한 말러 전문가가 소유해왔던 것으로 이 악보는 한화로 약 67억 원에 해당하는 450만 파운드에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사람에 의해 낙찰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생이었던 말러는 뉴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메트 오페라 지휘자 제안을 받아 1909년에 부임했으나 곧 토스카니니의 명성에 밀려나게 된다. 그런 그에게 뉴욕 필하모닉은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아 줄 것을 부탁하였고, 그 후 2년 동안 뉴욕 필을 이끌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연쇄상구균에 감염되자 미국을 떠나 파리에서 치료를 받던 중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말러는 지휘자로서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연주에 열중했고, 음악회가 없는 시기를 이용해 작곡에 몰두했다. 그러나 한두 곡을 제외하고는 초연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연주하려는 지휘자도 거의 없었다.


2번 교향곡과 더불어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은 5번이다. 최근 이 곡을 처음 접했던 한 지인은 말러의 곡을 듣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불평을 쏟아 놓았다. 한국에 있는 또 다른 지인은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9번 교향곡을 들으러 무작정 음악회장을 찾았고 작품에 매료되었다는 걸 보면 일반 청중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말러 교향곡을 들으러 찾아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고, 2-3년에 걸쳐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들도 생겨났다. 한 유명 소설가의 수필집에도 부천시향의 말러 교향곡 시리즈를 듣는다는 이야기가 등장할 정도로 오늘날 말러는 확실한 팬덤을 가진 작곡가가 되었다.


지난 11월 8일, 카네기홀에서 열린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에는 말러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다.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던 주빈 메타의 지휘로 열린 이 음악회는 교향곡 한 곡만 무대에 올랐다. 이 곡은 말러가 완성한 총 9개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작품이다. 여섯 개의 악장으로 나뉜 곡으로 알토 독창, 어린이 합창단, 그리고 여성 합창단을 포함하는 거대 편성이다. 1000명의 연주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천인교향곡’으로 알려진 8번 교향곡에 비해 출연자 수는 적지만 악곡의 복잡성이나 의외성 그리고 철학적 의미를 따져본다면 3번이 가장 장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Photo by Carnegie Hall - Steve Sherman


마치 듣는 사람의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이런 작품들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총 17시간 길이의 작품을 3일에 나누어 연주하는 바그너의 오페라 ‘반지’ 시리즈에 비하면 말러 3번은 양반이다. 한국에서는 2005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초청 공연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전곡 연주가 시도된 적이 없으니, 마음 급한 사람들은 실연을 들으러 독일과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도 한다. 


8시에 시작된 이날 음악회는 중간 휴식시간 없이 9시 50분까지 이어졌다. 100분에 이르는 길이에 첫 악장만 40분에 달하는 이 곡을 두고 말러 조차도 ‘내가 작곡한 가장 미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1번이나 5번 교향곡에 익숙한 청중에게 역시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음악을 따라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무대 위 연주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같은 곡으로 음반까지 출시했던 명문 악단이었지만 실연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홀을 채운 청중들은 일체의 미동도 소음도 내지 않았다. 필자가 찾았던 수많은 음악회 중 청중들의 수준이 단연 가장 높았던 공연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영감(靈感)의 원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