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계단만 내려가면 출근입니다.

거주 공간을 제공해주는 제주도의 직장을 다닌다는 것

by 유하

나는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부터 첫 직장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 데 할애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다닐 수 있어?’라고 물어보았지만, 정작 나는 그게 그렇게 싫지 않았다. 멀리 살기 때문에 늦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에는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변태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 제일 집중이 잘 되었다. 각 잡고 책을 읽으려고 할 때는 그렇게도 안 읽히더니, 왜 지하철에서는 그리도 잘 읽히던지!




그렇게 지겹도록 장거리 출근을 했었는데, 이번에 구한 직장은 달랐다. 집에서 열 계단만 내려가면 출근 완료였다. 왜냐하면 사장님께서 나에게 북 스테이 장소였던 가게 위층을 거주 공간으로 제공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꽤 괜찮았다. 아니, 너무 좋았다. 복층이었고, 위층에 누우면 유리창을 통해 별을 볼 수 있었다. 냉장고, 식기, 생활 용품 등. 풀옵션이었다.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전기세와 수도세만 내라고 하셨다. 나는 7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를 예상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가게에서 나오는 요금과 집 요금이 합산되어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월 15만 원으로 합의했다.


사장님께서는 나에게 딸 같다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사장님의 딸과 네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을 제공해주는 거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딸 같다’, ‘가족 같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아마 2030 세대는 다 그럴 것이다. 정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그런 말 한 사람 치고 싸하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일자리와 주거 공간을 제공해준다는 사람에게 이를 말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스러운 웃음으로 상황을 넘겼다.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한 나에게, 제주도 숲 속에 덩그러니 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은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처음 집을 둘러봤을 때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던 낭만은 첫날밤부터 사라졌다. 바람은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나를 위협했고, 바퀴벌레는 잡아도 잡아도 어딘가에서 계속 나타났다. 폭풍우가 세게 치는 날에는 전기가 반만 끊어져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상한 적도 있다. 집 밖, 창고에 있는 세탁기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고, 건조기도 없어서 바닷바람에 옷을 말려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심각한 일은 따로 있었다. 마냥 좋을 것 같던 집 아래에 있는 직장. 그게 내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다.


띠리링~ 띠리링~

제주도에 장마철이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부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받기 싫었지만, 끈질기게 울리는 핸드폰을 외면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약했다.

“여보세요?”

“유하야, 거기도 비 많이 오지? 우리 가게는 비 많이 오면 창문 사이로 비가 들이치거든~ 네가 밑에 내려가서 확인해줄 수 있어?”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던데,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 제가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알겠습니다.”


나는 하던 일이 끊겼던 게 조금 짜증이 났기 때문에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채신 것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사장님. 나는 부업을 하고 있었다고 했고, 사장님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장장 30분가량의 잔소리를 내놓으셨다. 결국 나는 밑으로 가서 비가 들이쳤는지를 확인했다. 막상 가게 안은 멀쩡했다. 나는 사장님께 보고 드린 뒤, 다시 내 일을 했다.


그다음 날은 내가 가게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 비를 흡수하기 위한 상자가 쫙 깔려 있었다. 밤 사이 사장님이 가게에 오셔서 깔아 놓으신 것이다. 내가 확인했을 때는 분명 깨끗했는데, 결국 비가 들이쳤을 줄이야. 사장님은 그런 나를 보며, 제대로 확인한 게 맞느냐고 되물으셨다. 나는 그때부터 사장님 눈 밖에 났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이번 주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수요일에 발행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화요일에 정상적으로 발행됩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다음 에피소드 이야기로 답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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