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방법 1
제주도에서 8개월 동안 머물면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맛집이 생겼다. 처음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곳이 맛집인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맛집 검색을 해보아도 '광고가 아닐까?'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며 찾아낸 식당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볼까 한다. 그 첫 번째 편은 내가 약 두 달 동안 살았던 표선면에서 발견한 맛집들이다.
추천 메뉴
100% 메밀 들기름면 (V) - 9,000원
직접 만든 수제 메밀면이라서 그런지, 면발이 꽤 통통하다. 면을 입속 한가득 넣으면 들기름 냄새가 솔솔 콧속을 뚫고 올라온다. 양이 아주 적은 편은 아니지만, 먹다 보면 아쉬워서 항상 '곱빼기로 시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점심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정식적인(?) 영업시간은 11시부터 17시까지다. 하지만 2시에 찾아가도 문을 닫았다고 제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이 식당은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예약은 따로 받지 않으므로 문을 열자마자 가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추가 추천 메뉴 : 메밀부추전(V) - 6,000
Behind story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 덕분이었다. 그녀는 제주도 해녀 학교에서 물질을 배웠다고 했다. '물질'은 해녀가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고, 한국은 해녀를 무형문화재로 보존하기 위해 해녀학교를 무상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수영조차 하지 못하는 나는 표선 바다에서 높은 파도를 철썩철썩 맞아가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거의 1시간도 안되어서 해녀에게 빠졌고, 내년에는 꼭 수영을 배우리라 다짐했다. 배가 고파진 나는 그녀를 따라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녀가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메밀밭에가시리'라는 식당이었다. 표선에서는 꽤 유명해서 나중에 꼭 오려고 점찍어뒀던 곳이다. 그녀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럽게 키오스크 앞에 섰다. 그리고 이곳이 양이 적은 편이라면서 들기름면 곱빼기와 메밀 부추전까지 야무지게 시켰다. 우리는 메밀국수를 한입 가득 넣고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 되었다.
추천 메뉴
돌솥비빔밥 (계란 빼고:V) - 7,000원
더덕비빔밥 (계란 빼고:V) - 9,000원
나물과 반찬이 정말 신선하다. 반찬은 매일매일 새로 만들어서 메뉴가 항상 다르다. 나는 항상 혼자 가는 편인데, 점심 때는 단체 손님이 많은 듯하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길게 영업한다. 화요일은 휴일이다. 엄마와 아들, 둘이서 운영을 하는 것 같다.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불친절한 적이 없다. 반찬이 떨어지면 바로바로 리필해주는 서비스! 계산할 때는 음식이 어땠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덕분에 나는 이곳 단골이 되어버렸다.
Behind story
잠에서 깨니 출근하기 1시간 전이었다. 역시 일하는 곳과 집이 가까우면 게을러지는 게 사람 심리일까? 하필이면 장을 보지 않아서 집에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아무것도 안 먹고 일을 하러 가면, 하루 종일 굶어야 했다. 나는 부리나케 인터넷으로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차로 10분 거리였다. 15분 만에 씻고 옷 입고, 차 타고, 10분 동안 이동해서, 10분 동안 밥 먹고, 10분 동안 책방으로 출근하는, 빡빡한 일정을 5분 만에 세웠다. 이렇게 해서 아점을 먹은 곳은 '시골친구'이다. 사실, 나는 이곳에 도착하기 5분 전에 계란후라이 없이 1인분을 미리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비건이기 때문에 계란후라이를 먹지 않는다.) 사장님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세팅까지 완벽하게 해 주셨고, 덕분에 나는 차질 없이 계획을 완수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출근하기 1시간 전에 눈을 떠서 부랴부랴 준비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이곳에서 밥을 먹으러 가는 횟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장님은 내가 식당에 도착할 때면 항상 이렇게 물어보신다.
"계란후라이 빼고 해 드릴까요?"
추천 메뉴
호박잎 수제비 (육수 빼고:V) - 8,000원
호박잎 칼국수 (육수 빼고:V) - 8,000원
매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서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사장님 혼자서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한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제주도가 막 쌀쌀해지기 시작할 무렵, 뜨뜻한 국물이 당길 즈음이었다.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인테리어도 독특하다. 호박잎을 참 좋아하시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난다. 다만, 길을 꺾는 구간에 식당이 자리 잡고 있어서, 처음 갈 때는 조금 헷갈린다. 근처에는 민속마을이 있는데, 별로 평점이 좋지 않다.
Behind story
운동을 꾸준히 안 하면 몸이 망가지는 게 금세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운동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한다. 요가를 혼자서 꾸준히 하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 즈음, 동네 근처 운동학원을 주욱 둘러보았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기껏해야 아이들만 다닐 수 있는 태권도 학원이 전부였다. 어찌어찌 찾다 보니 여자 관장님이 운영하는 유도학원이 보였다. 여자를 위한 헬스장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여자 관장님이 운영하는 유도학원이라니..! 유도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지만, 여자 관장님이 운영한다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상담을 하러 갔다. 근데 그곳에는 내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저기.. 혹시 유하 씨?"
나는 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사는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건네다니..!
알고 보니까 그녀는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는 구독자였다. 우리는 고작 1살 차이였고, 동네에 비건 친구가 생긴 나는 그녀와 함께 신나게 비건 식당 투어를 했다. 이곳은 우리가 야심 차게 표선 시내를 떠나서 함께 외식한, 첫 번째 식당이다.
추천 메뉴
붓가케우동 (V) - 7,000원
텐동 (새우, 오징어 빼고:V) - 8,000원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오후 9시에 마감하는 식당이다. 저녁에는 손님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지만, 점심시간은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된다.
나는 냉우동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곳 냉우동(붓가케우동)은 정말 맛있다. 후텁지근한 여름에 먹는 냉면처럼 냉우동은 진리이다. 만약, 우동이 정 별로라면, 텐동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튀김을 좋아했다고 한다. 25년간 튀김을 사랑한 사람으로서, 이 집은 튀김을 정말 잘한다고 자부할 수 있다.
Behind story
우리는 노을이 질 때면 저녁을 어떻게 먹을지 결정하곤 했다. 외식을 하자고 결정 난 날이면, 5번 중 3번은 꼭 이곳으로 왔다. 어쩌면 이곳은 내가 가장 다양한 사람을 데려온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놀이공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내 친구, 사촌동생, 유도장에서 만난 동네 비건 친구, 제주도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 등. '어떤 곳을 데리고 가야지 이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들 때면 항상 표선우동가게를 찾아왔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단골이 되어서 돌아갔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