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조건

내가 제주도에서 사귄 사람들

by 유하


“너, 공부 잘하는 애 하고만 친구해”

양육자가 자식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을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은 나에게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와 친구를 할 자격이 없는 걸까? 조건을 걸고 누군가와 친해진다는 것은 나 또한 나에게 그런 조건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그런 조건을 내걸고 친구를 사귄다면, 내가 공부를 잘해야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와 친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려고 했다.


그렇게 조건 없는 관계를 겪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된 나는 이제야 그 드라마에서 한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공부 잘하는 것’이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와 조금 다른 조건이기는 하지만, 나도 이제 친구를 사귈 때 어느 정도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는 성향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를 처음 경험하면 쉽게 당황한다. 그 상황에서 적절한 해결책을 주는 모델이 없으면 더욱 그런 것 같다. 나도 어른이 되면서 다양한 상황들이 나에게 닥쳤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런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적절하게 알려주면 그 상황이 조금 더 쉬워진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행동양식보다 더 괜찮은 행동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어제는 베스와 함께 용머리 해안에 갔다 왔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고, 안개는 바다 가까이 내려앉았다. 나는 베스와 함께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볼 수 없어서, 불평을 잔뜩 늘어놓았다. 내 불평을 들은 베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안개가 낀 것도 좋아. 뭔가 몽환적이지 않아? 동화 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나는 불평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몇 번 불평을 하긴 했다.) 베스와 함께 있으면 항상 내가 잊고 있었던 - 예전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 것들이 계속 상기된다.


요즘은 기념품샵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이곳에서 면접을 볼 때까지만 해도 여기에서 일을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 내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사장님과 둘이서 일한다. 사장님은 물건을 산 손님을 그냥 보낸 적이 없다. 만 원 이상 산 손님에게는 ‘뽑기’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추억과 선물을 품에 안고 가게를 나가게 한다. 내가 가끔 실수를 할 때는 초반에는 누구나 그렇다며 다독여주신다. 무례한 사람은 무시하거나 단호히 대처한다.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 멋진 대처법을 많이 알고 계신다. 그런 대처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이곳에서 길게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외에도 나와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친구, 누군가의 결정을 인정하고 지지해줄 줄 아는 친구, 사람을 어떻게 제대로 존중할지 아는 친구 등 나에게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내 곁에 두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은 모두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 친구들과 좋은 영향을 아주 적극적으로 주고받고 싶다.




다음주부터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잠시 휴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매주 수요일마다 [나만 보고 싶은 글] 매거진의 새 글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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