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제주 바다
제주도는 분명 매력적인 곳이다. 하지만 제주도가 ‘살기' 매력적인 곳인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지금부터 아홉 달 정도 제주살이를 해본 선배로서 제주 내돈내살(?) 찐후기를 적어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나는 이십 대 중반의 3년 차 비건이다.
우선,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제주도는 참 아름답다. 제주에는 똑같은 바다가 없다. 바다마다 각자의 색깔이 있다. 길에 놓여있는 야자수를 볼 때면 마치 외국에 와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노을이 지는 하늘은 도화지에 수채화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보다 더 그림 같다. 아, 이런 곳에서 산다면 분명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제주도에서 살면 바다를 매일 볼 수 있겠지? 잠 자기 전에는 산책하면서 별을 봐야지! 제주도를 여행할 때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낭만적인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지나친다. 그렇다. ‘관광지’로서 제주도는 너무 아름답다.
그렇다면 제주도에 ‘거주’하게 되면 과연 제주도가 계속 아름다울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바다를 너무 좋아해서 매일 바다를 보러 간다. 매일 바닷속에 잠기는 해가 하늘에 붉게 번지는 풍경을 보며 행복에 젖는다. 그래, 내가 이걸 보려고 바다와 가까운 곳에 집을 샀지,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이 ‘바다’ 때문에 곤란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사실 날씨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주 햇볕이 강한 날을 제외하고는 빨래가 바삭하게 마르는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래서 건조기를 쓰는 사람이 꽤 많다. 호주에서 건조기를 처음 봤던 나는 꽤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조기를 사용하다니! 햇볕에 말려야지 살균이 된다고 믿는 나는 조금 절망스러웠다.
두 번째로는 차가 빨리 부식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매일 차를 청소할 수 있을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차를 아주 아끼는 사람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같이 게으른 주인을 만난 차들은 꽤나 고생을 한다. 바다를 갔다 올 때마다 모래먼지가 쌓이고, 그렇게 청소를 안 하다 보면 먼지가 켜켜이 쌓여서 차 피부에 흡착(?)된다. 특히 나는 제주도에 와서 차를 처음 끌어봤기 때문에 여기저기 상처를 많이 냈다.
제주도에서 사는 것에 또 다른 단점은 물가가 장난없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살면, 매일 제주를 구경하는 대가로 다른 곳에서 살 때보다 돈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차가 없으면 어디에 가기가 힘들다. 마치 외국에 사는 느낌이랄까? 내가 호주에 살 때도 시내에 살지 않으면 걸어서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보려면 차가 꼭 필요하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으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대중교통을 위해서는 제주의 자연을 훼손해야 하잖아?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한번 외식하기도 엄청 힘들다. 게다가 사실 나는 비건이라서 외식을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서울에서도 비건 식당에 가려면 꼭 오픈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였지만, 제주도에서는 식당 자체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외식하러 갈 때면 정말 피곤하다. 제주도에서는 워라밸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식당을 오픈하는 시간도 길지 않다. 그나마 굳이 비건 식당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가게가 그렇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그럼에도 나는 제주도에서 계속 살고 싶다.
소금 바람에 애매하게 말린 옷을 입고 매일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 부지런한 내가 게으른 나를 이기는 날이 많아져, 내 차가 말끔해졌으면 좋겠다. 비건 식당의 오픈 시간을 줄줄이 꿰어 친구들이 올 때마다 소개해주고 싶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계속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