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공존했을 때

by 유하

달리기로 내 제주 일상을 시작한 지 2주가 되었다. 나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일정이 있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에 머문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린다. 그렇게 하루를 실컷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비몽사몽 달릴 준비를 하다 보면, 졸음은 싹 달아난다.


달리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꼭 해야 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일치한다니!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이 둘이 공존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달리기로 시작한 하루는 ‘오늘 내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준다. 그런데 달리기가 없는 하루는 있던 의욕도 사라지게 한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며 하루를 살아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채비를 하고, 바다까지 뛰어가는 과정은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보다 더 설렌다. 매일 햇빛에 반짝이는 은빛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이는 제주도에서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이런 특권을 갖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새벽, 아침, 점심, 저녁, 밤. 보석처럼 눈부신 바다, 다양한 사람들이 넘실거리는 바다, 붉은빛으로 물든 바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애니메이션만 마음껏 볼 수 있을 적에 내 꿈은 해적이 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서 모험을 하며 성장하는 것이 그렇게 멋있었다. 그 과정에는 항상 바다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바다를 볼 때 아직까지도 내가 멋진 모험을 하며 성장하는 상상을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길까?’ 바다는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제주로 이사하기 전부터 나는 꾸준히 달려왔다. 물론 지금처럼 촘촘히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집 근처 공원까지 가는 길은 화물차의 매연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달리는 것이 내키지 않을 때는 고민 없이 포기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린 이유는 ‘달리기’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어서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달리기가 별로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에게 매일 달리기를 한다고 말할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달리기가 뭐가 재미있는 거지? 발을 앞 뒤로 반복하며 움직이는 것은 꽤 지루한 운동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에 내가 지속적인 달리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전 애인 덕분이었다. 그 사람은 매일 10km씩 달린다고 했다. 나는 그와 함께 나눌 이야기 소재가 더 풍부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기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애인과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달리기에 대한 동기도 사라졌다.


지금은 달리기에 대한 나의 마음과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계속 나아가는 운동은 아마 달리기 밖에 없을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눈이 올 때나 비가 올 때도 어김없이 달린다. 아침에 못 달리면, 저녁에 달린다. 그렇게 매일을 예외 없이 달리다 보니, 바다까지 달리는 길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 되었다.


나는 달리기 코스를 정할 때도 여러 가지 코스를 뛰어 보고 정한다. 나는 달릴 때 ‘잘’ 달리려고 하면 금방 지친다. 달리는 동안 지치지 않도록 잘 달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해주어야 한다. 사소한 성취라도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무리하지 마, 그 대신 너를 과소평가하지 마. 이 말을 끊임없이 되뇌어야만, 루즈해지지도 않고 번 아웃되지도 않는다. 덕분에 평소에도 게으른 나와 열정이 넘치는 나를 잘 협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매일 달리기를 한지 아직 2주밖에 안 되었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제주도에서 달리기를 하며 느낀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