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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oo Mar 09. 2022

내가 5개 국어를 하게 된 이유

언어 공부를 하며 '운명적인 사랑'을 찾은 이야기

나는 다섯 가지 언어를 사용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영어가 모국어인 애인과 영어로 두세 시간씩 이야기를 한다. 장거리 연애를 하며 생긴 습관이다. 그렇게 멀리 사는 애인과 수다를 떨다가 애인이 잠에 들면, 스페인어 스터디에 보내줄 문법을 정리한다. 얼마 전에 스페인어 스터디를 만들었는데, 매일 일기를 써서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그 스터디가 끝나면,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한국어 수업을 진행한다. 중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을 가르칠 때는 내가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러 언어를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외국인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었다. 왠지 다른 언어로 하는 대화는 한국어로 하는 대화와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여러 언어를 배우겠다고. 

결국 나는 그 꿈을 이뤘다.


내가 맨 처음 취미로 시작한 언어는 중국어였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 주에 2~3일마다 어학원을 다녔다. 나는 그곳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생이었다. 그 덕에 함께 공부하는 분들께 이쁨을 독차지했다. 나는 중국어 공부를 하기만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그 칭찬들이 너무 달콤해서 2년 동안 꾸준히 중국어 공부를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갔다. 그곳에서 일본 친구들과 대만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특히 일본인 친구와는 룸메이트로 지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한국어를 굉장히 잘했다. 부산 사투리를 부산 사람보다 더 잘했다.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나도 일본 오사카 사투리를 배우겠다고 선언했다. 그 친구는 일본 예능과 드라마를 추천해주며 내 일본어 공부를 도왔다. 결국에 오사카 사투리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일본 친구들도 내가 자기들의 언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기꺼이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영어 실력은 호주를 갔다 온 이후, 한국에서 늘었다. 왜냐하면 나는 호주에 가기 전에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자주 해외여행을 갔는데, 그때마다 친화력이 너무 좋아서 이상한 영어로 친구를 곧 잘 만들었었다. 그래서 호주에서 있을 때는 영어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 사실, 영어권 국가에 있으니까 알아서 늘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니까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아, 내가 영어를 진짜 못하는구나. 영어권 국가에 머문다고 영어가 다 느는 것은 아니구나. 


그 이후로 나는 미친 듯이 미드를 쉐도잉 하기 시작했다. 하늘이 그런 나를 보고 감동한 것인지, 그 시기에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나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각 잡고 공부한 것은 학생 이후로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나는 쉐도잉에 맛을 들려, 하루에 일곱 시간씩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했다. 그 후에 나를 처음 보는 외국 사람들마다 나에게 교포냐고 물어보았다. 


 스페인어는 조금 어이없는 이유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친구와 우연히 타코 집에 갔다. 그때 처음 맛 본 타코는 너무 황홀해서, 그 뒤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타코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타코 집에서 라틴음악을 알게 되었고, 라틴계열 친구가 생겼다. 라틴문화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특히 영화를 볼 때 나오는 라틴 춤들이 너무 멋져 보였고, 남미에 꼭 가서 그 춤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 KOICA에서 남미로 봉사 활동을 갈 한국어 선생님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페인어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시작한 스페인어는 이제 스터디를 운영할 정도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외국어를 하나둘씩 공부하다 보니, 언어 공부는 나에게 취미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취미로 배운 언어를 이용하여 돈도 벌고 있다. 하지만 언어 공부는 나에게 취미와 돈, 그 이상이다. 언어는 ‘나’라는 사람을 계속 새로운 사람으로 확장시켜주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에 따라 내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다. 한국어에만 있는 표현이 있듯이, 다른 나라에도 그들의 언어에만 있는 표현이 있다. 그들의 표현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내 생각과 행동의 반경은 더 넓어졌다.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했던 내가 한 가지를 쉬지 않고 하게 되었다. 언어 공부를 하면서 좋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하기 싫은 순간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이게 진정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그렇게도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이 세상에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고 결론지었던 내게, 언어 공부는 나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이었다. 나를 성장하게 하는 사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나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 내가 원했던 이상형 끝에 ‘사람'을 지우고 ‘언어 공부'를 넣으니 언어 공부는 내 사랑이 맞았다. 


운명적인 사랑을 포기했던 내가, 몇 년째 언어 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처럼 누구든 운명적인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행위이든 그 어떤 존재일지라도. 

이처럼 내 인생의 업(業)을 찾는 일도 ‘운명적인 사랑'을 찾는 일과 같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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