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제주도에서 살아남기
우리는 독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독립하기로 했다.
나와 내 십년지기 친구는 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누구나 제일 친한 친구가 되면 그렇듯, 우리는 나중에 크면 함께 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리고 스물네 살이 된 우리는 진짜 함께 살게 되었다.
나는 호주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2년이 다 되어가서 온몸이 근질거렸고, 친구는 가족들과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아 했다. 마침 친구는 3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고, 나는 뭐,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친구는 3년 동안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일해서 쉴 시간도, 어딘가로 여행 갈 시간도 없었다.) 이건 분명 우리 둘이 이곳을 훌쩍 떠나서 함께 살라는 신의 계시(?)였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훌쩍 떠나고 싶었지만, 훌쩍 떠나서 독립할 만큼의 돈은 없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려면 보증금 몇천 정도는 있어야 했는데 내가 모은 돈은 고작해야 삼백만 원 정도였고, 친구는 단 한 푼도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주거와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거와 일자리를 한 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지방에 있는 공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장이 싫었다. 예전에 단순 포장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안 하게 되는데, 그 시간은 마치 이 세상에 인간 ‘안유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냥 기계가 된 느낌이었다. 이렇듯 공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정해지고, 행동을 따라 내 사고가 갇히는 것이 싫었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고,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가장 무서웠다.
이런 회색 공간에 나를 집어넣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새로운 색깔이 보였다. 제주도, 놀이공원 알바. 관객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이었는데, 기숙사와 식사 두 끼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급여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것은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과 주 6일을 근무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짧았고, 무엇보다 내 친구는 댄서였기 때문에 딱이었다. 물론 나는 춤을 잘 추는 편이 아니었다. 춤을 마지막으로 춘 적이 교회 장기자랑이었나..?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뭐, 언젠가 춤을 배워보고 싶었으니까 지금이 기회네,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곳에 지원했다.
사실 ‘제발 붙어라! 꼭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냥 ‘붙으면 가고 안 붙으면 말지 뭐.’라는 식으로 지원했다.
며칠 후, 그곳에서 붙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 우리 둘이 함께 살라는 신의 계시라니까?
매거진, [제주도에서 무자본으로 살기]는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