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감정에 자신감이 없었다.
나도 글을 쓰기가 낯간지러울 때가 있었다. 나는 글 쓰는 것을 항상 동경했는데, 왜인지 내가 글을 쓸 때면 어색해서 소름이 돋았다. 내 글을 다시 읽는 것도 싫었다. 왜냐하면 그 글은 항상 거짓말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멋진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없는 것들만 글에 덕지덕지 붙여 쓰곤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에게는 멋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 자존감도 아주 낮았다.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인 거짓 자아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인 참 자아의 격차가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척 애를 썼고, 나를 돌볼 에너지는 없었다. 글을 쓸 때도 그랬다. 우리의 글쓰기는 대부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기’라는 형태로 처음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완성해도, 그 글을 다시 보지 않았다. 그 글은 나를 위한 글이 아니니까.
나는 누군가로부터 내 감정의 정당성을 인정받아본 경험이 드물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는 이혼했기 때문에 혼자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유치원에 있거나 이모집에 있었다. 나는 저녁이 되면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매일 울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네가 울면 네 엄마가 너무 슬퍼해.
내 감정은 항상 엄마를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나의 불안함, 슬픔, 그리움은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어린아이보다 그 애를 혼자 키우는 여자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불효자가 되었다. 그렇게 내 감정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감정에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슬퍼도 다른 사람이 ‘그건 슬프면 안 되는 상황이야.’라고 말하면 내가 슬퍼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나조차도 내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남의 감정만을 생각하며 살기 시작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고, 그가 슬프면 나도 슬펐다. 내 감정을 꾹꾹 억누르기만 했다. 계속해서 못 본채 하고 내 감정은 모두 틀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병이 들었다. 내 감정을 계속 부정한 대가로 몇 년 동안이나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주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계속해서 내가 뭘 원하는지 물었고, 그것을 하며 살아갔다. 중간에 포기도 많이 했다. 무언가를 포기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너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애가 아니지 않냐며 내 거짓 자아를 나에게 투영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나의 말만 들었다.
그래, 포기하고 싶어? 그럼 포기해도 괜찮아. 완벽히 끝내지 않아도 괜찮아. 소득이 없어도 괜찮아. 재미있기만 해도 괜찮아. 너의 선택이니까 괜찮아. 나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남이 나에게 원하는 모습인 거짓 자아를 계속 깨트리다 보니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후회를 해도 탓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상황이, 나는 더 좋았다.
나는 반 고흐를 가장 좋아한다.
반 고흐는 생전,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유명해진 화가다. 그와 그의 동생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며 반 고흐가 얼마나 그의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를 느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배를 곯아가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내 생각이나 결정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지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글을 남겨 놓으면 그걸 읽은 다음 세대 중에 나를 인정해줄지도 모른다고. 혹은 나와 같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글을 보며 위로받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이후로는 나의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해 보이고 유치해 보이더라도 나를 위해서, 또는 나와 아주 비슷한 감정을 겪을 누군가를 위해서 글을 쓴다. 그리고 아주 최근부터는 내가 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며, 나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게 즐겁다. 내 글을 읽는 것도 행복하다.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매일 나만을 위한 글을 쓴다.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며 나와 대화할 정도로 나 자신을 많이 아낀다. 이 글을 읽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누군가도 나처럼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하며, 나는 계속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