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배려

#Først

by 니키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께서 학생기록부 메모란에 적어놓으신 문구가 기억이 납니다.

교우관계가 원만하며 배려심이 많습니다.

요즘 같은 입시경쟁 사회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 손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시절에는 보기 좋은 덕목이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저도 '제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작은 배려는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근처 편의점까지 우산을 씌어준다 정도의 선의의 배려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배려가 약점이라 느껴졌습니다. 상대의 편의에 맞춰 시간을 조율해 주려다가도 나의 시간이 상대의 시간보다 우선이라는 그 강한 기싸움의 전선에 들어서면 절대 배려할 수 없더랍니다. 게다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하루가 너무 벅차고 고된 어떤 날에는 나의 편의를 위해 퇴근버스에서 복도 쪽에 떡하니 앉아 누가 힘들게 창가자리로 들어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던 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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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저희 동네에 수도관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덴마크는 원체 모든 게 느려서 단순한 공사도 한참 걸립니다. 저희 아파트에는 두 곳의 주차장이 있는데 하나는 입주민만을 위한 주차장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 주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희한하게도 입주민 주차장은 건물을 돌아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주차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굳이 왜 입주민 주차장이 더 불편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90년이 넘은 건물이라 주차장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던 시절의 건축계획이어서 그랬겠거니 정도로 이해해 봅니다. 반대로 누구든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차에서 나오면 몇 걸음만에 아파트에 들어옵니다. 정말 편하지요. 그래서 공용주차공간은 항상 만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동네 수도관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주민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공용주차공간을 비워놓고들 멀리 돌아갑니다. 이유인즉슨 공사 때문에 막힌 다른 공용주차 지역에 차들이 주차를 하지 못하니 아파트에 살지 않는 다른 차주들을 위하여 공용주차공간을 비워놓는다는 겁니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I CAN WALK A FEW MORE STEPS. FREE EXERCISE!"
"몇 걸음 더 걸을 수 있어. 공짜로 운동하는 거지!"


이렇게 투박하고 무심하게,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할 수 있다니. 내가 그 배려받은 차주도 아니었는데 마치 내가 배려받은 마냥 설레었달까요.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상대의 입장일 때를 생각하며 그때의 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배려의 의미라고요. 어쩌면 배려는 남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배려받을 기회를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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