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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헌 Jun 03. 2019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이상과 현실 -

누군가에게 이상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몽이기도 하죠 

주제 : 이상과 현실 / 작품 :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두근두근 토요일에서 나눈 대화를 소재로 쓴 글입니다.



이상은 어떤 현실을 선택할지에 대한 문제다.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당신은 이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신가요?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앞서 이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상은 아직 우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현실을 바라는 것일 테고요. 그래서 이상주의자라 함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바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반에 현실주의자는 지금 존재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없는 그 무엇보다 있는 실재들에 집중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상적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뜻은 아닙니다. 이상은 자칫 잘못하면 상상과 몽상을 넘어 망상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현실과 괴리가 큰 이상들은 주로 이런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상주의자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킨 사람들에게는 이상주의자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체 게바라에게 몽상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가 생각했던 이상을 실현했기 때문에 혁명가라고 불리죠. 어쩌면 이상주의자는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실현시키지 못한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체 게바라도 혁명을 성공시키기 전에는 이상주의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혁명을 시도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이상주의자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수많은 이상들이 얽히고설킨 이상들의 전쟁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이상을 현실로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상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내재된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현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일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 시절 갈등하는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대의에 함께한 형제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이상으로 갈등을 하다가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선택한 이상이 다를 뿐입니다. 서로가 선택한 현실이 다른 것뿐이지요. 그런데 형제는 서로 다른 이상 때문에 상대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를 죽이면서까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그것이 어떤 이상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도달한 이상이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 불만족해서 이상을 추구합니다. 더 나은 현실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내 현실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달성해야 할 이상은 무엇인지 그런 이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제가 혈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은 해봤습니다. 사실, 혈연이라는 것도 일종의 관계에 불과한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부여된 의미에 당연하게 동조하고 있지 않나 하고 말입니다. 형제를 죽여가면서까지 이상을 실현시켜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다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있다거나 하면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항상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현실에 눈 감은 장님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요. 사상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왔습니까? 십자군 전쟁 때도 그랬고, 이슬람교도들의 테러도 그랬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의 숙청도 그래 왔고요. 물론, 이런 사건들은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을 실행한 사람들 중에는 이상에 대한 맹목적 추종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형제도 이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했다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누군가의 이상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악몽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두 형제의 상황을 봤을 때 나의 이상이 타인에게도 이상이 되지는 않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노예들의 이상은 주인들의 이상과는 상반될 수 있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실은 이상들의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상을 현실 속에 실현시킬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자본주의가 악몽일 것이지만 자본주의자들에게는 그렇지 않겠지요.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이상은 결국 현실을 파괴해야 달성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과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지금 실재하는 현실에 균열을 내고 지금은 없는 이상을 현실 속에 끼워 넣는 것이니까요. 이상이 실현된 현실은 전과는 다른 현실이 되겠죠. 그러면 이상이 실현되기 전의 현실은 파괴된 것일 테고요. 그래서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을 재건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현실을 허물어야 새로운 현실을 지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 현실이 악몽이라면 그 과정은 지옥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고 그 현실이 이상과 부합한다면 천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상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내게는 꿈같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여러분에게 처음 드렸던 질문을 다시 건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상주의자인가요, 아니면 현실주의자인가요? 만약 이상주의자라면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계신가요? 그 이상은 지금의 현실을 파괴하면서까지 실현시킬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여러분의 이상은 누군가에게 악몽이 될 수도 있을까요? 이상을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현실에서 바꾸고 싶은 그 무엇이라 상정해본다면 우리는 모두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도 분명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는 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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