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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헌 Dec 17. 2018

귀여운 여인
- 사랑, 자아의 상실 -

비주체적 상태와 적극적인 수동적 사랑에 대하여

주제 : 낭만과 욕망 / 작품 : 귀여운 여인 <안톤 체호프>

두근두근 금요일에서 나눈 대화를 소재로 쓴 글입니다.



사랑이란 내 안에 타인을 불러들이는 경험


올렌카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인물입니다. 사랑이 없을 때 그녀는 활력을 잃어버리죠.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찾아 헤맵니다. 첫 번째 남편은 극단을 운영하는 쿠킨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도우면서 극단에 대한 열정을 갖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극장과 극단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불의의 사고로 그녀는 남편을 잃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서 전과 같은 열정은 볼 수 없었죠. 그리고 몇 개월 후 교회를 마치고 우연히 푸스토발로프라는 벌목꾼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안 가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올렌카는 벌목에 대한 열정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에 있던 극단과 극장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한심하다고 말하기까지 하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대상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꿉니다. 그 이후로도 사랑하는 다른 대상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가져옵니다. 이런 그녀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은 없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사랑은 언제나 타인을 나의 세계로 불러들이는 경험입니다.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 하지 않았을 것을 타인을 통해 경험하게 되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올렌카는 그러한 사랑의 속성을 잘 드러내 주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녀의 적극성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성장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타인을 통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나의 세계가 내 연인으로 인해 확장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이 성장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위한 아주 좋은 도구인 것은 확실합니다.


올렌카에게는 이런 성장이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녀가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 사랑에 대한 욕망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까닭은 사랑이 남겨준 타인에 대한 흔적인데 그녀는 그것을 모조리 지워버립니다. 푸스토발로프를 만난 후 극장이나 극단에 대한 생각을 모두 잊고 아예 새로운 생각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사랑이 우리를 성장으로 이끌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타인이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받아들일 '나'가 존재해야 하는데 자기가 없는 사랑은 결국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겠지요. 그녀를 보면 그런 흔적 따위는 필요 없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적극적인 수동적 사랑에 대하여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적극적인 수동적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존재 앞에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올렌카는 그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단순히 사랑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뭔가 대상에 대한 특별함보다는 사랑 그 자체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 수련

그녀는 용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자신이 주려는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면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사랑을 한 것 같아요. 사랑이야말로 정말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어요? - 지은



사랑에 있어서 용기는 그것을 얻을 때에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곤 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할 때야말로 용기가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때때로 내가 주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혹은 너무 사랑해서 나 자신을 잃지는 않을지 걱정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걸고 온전히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죠.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사랑에 솔직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방법을 배워갑니다. 올렌카처럼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죠. 


사랑의 시작은 비주체성에서부터 올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겠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사랑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수동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험이 우리를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이끌어주기도 하니까요. 비주체성으로 인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얼마나 용기 있을 수 있는지입니다. 사랑도 겁이 많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날 떠나면 어떡하지, 내가 준 사랑만큼 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들 때문에 말입니다. 


올렌카는 이러한 것들은 전혀 괘념치 않게 행동합니다. 자신이 생각이 무엇이 되든 중요한 것은 대상에 대한 사랑이지 내 생각은 아니라고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다니는 수동적 사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랑을 하고 나면 우리 안에는 사랑에 대한 흔적이 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전의 '나'와 그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나를 잃겠다는 결심이기도 합니다.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타인이 서 있는 저곳으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그리고 타인도 나를 향해 다가 오면서 결국 '우리'는 전혀 다른 땅에 서 있게 됩니다. 사랑을 하면서 나를 끝까지 지키려고 하면 타인이 결국 떠나겠지요. 그리고 사랑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자신만이 남아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좋은 사랑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올렌카야말로 진짜 사랑을 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랑이 완벽할 순 없으니 그녀의 사랑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 용기와 그녀가 보여주는 적극적인 사랑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 종헌

그렇게 볼 때 사랑을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랑의 대상 또한 중요하겠지만, 그녀가 사랑했던 대상이 대단해서 그녀가 그런 사랑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모두 버리지는 못하겠지만(그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모두 버릴 수 있다는 각오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랑할 수 있는 정열적인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사랑 후에 남은 흔적은 그 무엇보다 뜨거워서 나의 세계를 그 무엇보다 확장시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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