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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Mar 16. 2023

꽃이 피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니까요

<꽃들아 안녕> 나태주

수요일은 시요일! 시 배달 왔습니다.


아이들과 매주 월요일에 시를 필사하고 생각을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올해 육 학년을 맡았고 저도 처음 해보는 활동입니다. 잘 풀리든 이리저리 꼬여가든 저로서는 배워가는 입장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여겨질까요? 어쨌든 판을 펼쳤고 배울 일만 남았습니다.



<꽃들아 안녕>

- 나태주


꽃들에게 인사할 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를

해서는 안된다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꽃들아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함이

백번 옳다.



아이들은 10칸 노트는 많이 써봤지만 원고지는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제목을 쓸 땐 가운데에 올 수 있도록 칸 수를 계산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음,,, 우리는 처음이니까 세 칸을 띄어서 쓰자.”

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수학 시간이 돼버리면 곤란하니까요.

“시에는 덩어리가 있는데 그걸 ‘연’이라고 해요. ‘연’과 ‘연’ 사이는 한 줄 띄어서 씁니다.”

“선생님! 받아쓰기 시간 같아요.”

“노트 이쁘다.”

“작가들은 글 쓸 때 이런 원고지에 써요?”

“선생님은 어디에 써요?”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말을 하며 손을 놀립니다. 시를 쓰는 시간이 즐겁길 바라지만 쓸 때는 온전히 시에 집중하길 바라는데요. 시 쓰는 분위기에 대해 고민해야겠습니다.  


필사를 마치고 제일 아래 칸에 시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 질문 등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뭘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시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적으면 돼요. 사소한 것도 좋고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좋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찾아도 좋고. 음,,, 예를 들면 꽃들에게 왜 인사를 해야 하죠?라고 반박을 해도 좋구요.“


예시를 잘못 들었기 때문일까요. 아이들이 쓴 생각은 제가 이야기한 예시와 비슷한 게 많더라구요.

[ 제목은 ‘꽃들아 안녕’이라 써놓고, 내용은 전체한테 인사하면 안 된다니, 말이 안 된다. ]

[ 꽃들도 생명이긴 한데 굳이 인사해야 하나? ]

[ 이걸 왜 쓰는지 모르겠다. ]

다음번에는 예시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제가 좁혀버리는 느낌이어서요.


한 친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하면 안 되는 이유는 꽃들이 서운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또 다른 이유는, 꽃봉오리에서 꽃이 피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니까, 한꺼번에 인사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


누구나 한 번은 제철이 있다고 하죠. 가장 예쁘게 피어나는 시기에 눈을 맞추며 안녕을 건네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始 시詩 한 이야기

3월은 학교에서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첫 만남이 시작되고 학급의 규칙이 세워지고 모든 것이 움직이는 시기예요. 아이들 역시 새 학기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져 있죠. 자신의 작년을 모르는 새로운 선생님과 줄다리기를 하기도 합니다. 간을 본다고 하죠. 저도 아이들의 간을 보지만 아이들도 선생님의 간을 봅니다. 다만 저는 한 명, 아이들은 여러 명이라는 차이점이 있죠. 제가 제일 많이 하는 단어는 바로 “애들아”입니다.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단어는 “선생님”이죠. 새로 만난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하나, 하나의 꽃송이로 다가오려고 애를 씁니다. 쉬는 시간에 괜히 찾아와 “호랑이의 이가 빠지면 어떻게 되게요? 호랑!”이라고 한다거나 손톱 밑 거스러미를 보여주며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행동들이요. 하지만 저는 “애들아”로 답할 때가 태반입니다. 그런 저에게 “애들아 안녕”으로 쉽게 퉁치지 말라고 시가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3월의 첫 시는 저와 이렇게 만났습니다.



나란히 앉아있던 세 친구는 사이좋게 계절을 나누어 썼네요. (앞에 앉아있던 친구도 같은 편이었나 봅니다.)

인사와 안녕을 이별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묘하게 와닿네요. ('무엇보다 '나태주'가 익숙한 이름이다.'라고 쓴 부분도 묘하게 끌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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