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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Apr 05. 2023

다른 건 다르다고 해야지

<웅덩이> 김개미

수요일은 시요일! 시 배달 왔습니다.


3월이 지나갔습니다.

'벌써?'라는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드디어!'라는 후련함이 몰려듭니다. 저도 모르게 잔뜩 힘을 주고 있던 긴장감 때문이겠죠. 상대의 선을 넘어보고 나의 선을 지키기 위해 셀 수 없이 찔러보고 눈치도 보며 부딪혔던 3월이었습니다. 탐색의 시간을 가지며 우리는 친구의 모든 것을 보았을까요?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요?

<쉬는 시간에 똥 싸기 싫어>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시집을 펴낸 김개미 시인의 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웅덩이>

- 김개미


나한테 침과 담배꽁초

들끓는 모기떼뿐이라고?


얼굴 말고 가슴을 봐

난, 별을 껴안고 있어



필사를 하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었습니다. 제목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은 채 시를 읽은 뒤 질문을 던졌죠.

“무엇에 대해 쓴 시인 것 같아요?”

“모기요!”

“구름?”

정답을 빨리 맞히고 싶은 마음에 몇몇 아이들은 시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찍기에 바쁩니다.

“선생님 이 부분 오타에요? '모기 때문이라고'가 맞지 않아요?”

“‘떼’라는 말은 모기가 엄청 많다는 뜻이에요.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할 때의 ‘떼’에요.”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길로 빠져나갈 무렵에 한 친구가 저희를 막아섰습니다.

“선생님! 호수요!”

“오! 모기는 흐르는 물이 아니라 고인 물에서 번식하죠. 거의 비슷했어요. 이 시의 제목은 ‘웅덩이’에요. “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웅덩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은 없는지, 다른 사람이나 친구를 웅덩이처럼 생각한 적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더럽다 여겨지던 웅덩이도 별을 껴안는다는 게 멋있다.]

[웅덩이를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친구도 겉모습만 보고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

라며 학교폭력을 이야기하기도 했구요.


[대한민국도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얼굴 말고 가슴을 보라는 말이 인상 깊었는지 이렇게 적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친구는 탁상 거울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수시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만족하고 있을까요? 비판하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길 바라봅니다.


+ 시始 시詩 한 이야기

저희 반 친구 원호(가명)는 매일 수업 시간에 코를 팝니다. 손가락에 걸리는 코딱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걸 꼭 파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입니다. 문제는 다른 친구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문제는 너무 깊이 판다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코 파면 안 돼.”라는 말에 “네 알았어요. 안 팔게요.”라고 답하며 기운차게 팝니다.

언제까지? 코피가 날 때까지!

“선생님 저 코피 나요!”라고 말하며 손을 든 원호의 검지손가락은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비위가 약한 몇몇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헛구역질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원호가 코를 파는 게 싫습니다. 수업에 방해가 되고 위생에도 좋지 않다는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가장 정확하게는 원호가 코 파고 있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어서 싫습니다. 뒷자리에 앉아있을 땐 이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최근에 자리를 바꾸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앞에서 두 번째 자리! 명당 당첨입니다.


이 이야기를 제 친구 ‘무’에게 했습니다. ‘무’는 이야기했죠.

“그런데, 코딱지 파면 위생에 안 좋은 거 맞아?”

던져진 물음표에 ‘설마’라는 마음을 담아 검색을 시작하였고 곧, 엄청난 기사를 발견합니다.


예상 밖의 연구 결과가 있다. 코딱지를 먹으면 신체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것. 지난 2013년 캐나다 서스캐처원대 연구팀은 코딱지를 먹은 사람의 신체 면역력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에 앞서 오스트리아 폐 전문의인 프리드리히 비스친거 박사 역시 코딱지를 먹는 것이 인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며, 의학적 일리가 있는 행동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지난 2016년 독일 튀빙겐대 연구팀은 실제 코딱지에서 살균 효과가 있는 '루그더닌'이라는 물질을 발견했다.  

(출처: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1/16/2020111602092.html)


코딱지 하나에도 이렇게 좋다 나쁘다 의견이 분분한데, 원호의 행동에 짜증이 난 저를 돌아봅니다.

사실 원호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살짝 다르거든요. 여기에서도 ‘무’는 끼어들었죠.

“다른 건 다르다고 해야지. 왜 똑같은 것처럼 바라봐야 해?”


찔렸습니다. 거짓말하다 들통이 난 것 같았거든요. 다른 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도덕이라는 포장을 덧씌우며 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수 아동이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똑같이 대해야 해.’ ‘특수 아동이어도 이 규범은 지킬 수 있어야 해.’라는 식으로 저도 모르게 다름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동정이든 연민이든 용기가 없어서든 온갖 핑계를 대며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원호는 확실히 다릅니다. 말투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릅니다. 하지만 원호만이 품고 있는 별들도 분명 있습니다. 생각하고 말하는 건 어려워하지만 수학적 알고리즘을 정확하게 머릿속에 입력할 수 있구요. 성량이 풍부해 노래를 크게 잘 부릅니다. 한글을 아직 다 못 떼었지만 글씨체가 굉장히 바르고 멋있요. “도와줄까?”라는 물음에 “아니요. 제가 할래요라며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한 다른 것들을 껴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건 다른 거죠.

아닌 건 아닌거구요.

저는 이걸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덧붙이는 말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코 파서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데요.... 아아... 아니에요.... 코는 파면 안됩니다.


사람이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표현한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별은 엄마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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