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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Apr 12. 2023

깊이는 횟수와 상관이 없어요

<많이 들어도 좋은 말> 오은

수요일은 시요일! 시 배달 왔습니다.


매번 짧은 시를 나누다가 호흡이 긴 시를 적어보았습니다.

말에 대한 시입니다. 생각이 말이 될 때 힘을 가지게 되죠. 듣는 사람은 그 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많이 들어도 좋은 말>

- 오은


많이 들어도 좋은 말에 대해 생각한다

들을수록 깊어지는 말에 대해


잘했어, 잘했어, 잘했어,,,,,,

잘했다는 말이 반복되니 다음에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어떤 고마움은 반복되면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

매일 행복하다는 주문을 걸다 정작 커다란 행복이 찾아왔을 때 당황하곤 한다


그리고 딱 한 번뿐이었어도 좋았을 말

미안해


깊이는 횟수와 상관이 없구나

목말랐던 어떤 말을 들으면

마음의 우물이 저절로 깊어진다


시를 쓰기 전에 많이 들어도 좋은 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많이 들어도 좋은 말은 뭐가 있을까요?"

"예쁘다,라는 말은 매번 들어도 좋아요!"

"잘했어, 같은 칭찬이요."

"아무리 칭찬이어도 성의 없이 말하면 오히려 기분 나쁘지 않나?"

"맞아, 보지도 않고 잘했네, 하면 힘 빠져."


['잘했어'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 부담이 생긴다. 때로는 내가 실수했을 때 '잘했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위로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말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내게서 시작하지만 듣는 상대에게서 끝나기 때문이죠. 



+ 시始 시詩 한 이야기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듣는 편입니다. 듣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듣고 난 다음이 어렵죠. 들은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아할까?’ ‘떠오르는 대로 말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할 말을 찾아서 할 때도 있지만, 온전히 나를 위해서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미안해’나 ‘사랑해’ 같은 말을 할 때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미안해’에 담긴 숨은 의도는 상대방의 용서를 통해 저의 죄책감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미안한 감정을 없애고 싶어서죠. ‘사랑해’에 담긴 의도는 보다 명확합니다. 상대방에게서 ‘나도 널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죠. 내 사랑이 그쪽으로 잘 가닿았는지 그리고 다시 잘 돌아오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몇몇 말들은 현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다’는 관계 덕분에, 비슷한 말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감정이 담긴 말일수록 힘은 강해집니다.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공감을 만들어내지만 약간이라도 틈이 어긋나면  부담감이 생기기 마련이죠. ‘사랑해’가 의무와 부담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꿀꺽꿀꺽 삼키는 어떤 말들은 그대로 고여 제 우물을 깊게 만듭니다.


어떠한 설명도 붙이지 않은 '미안해'가 묵직하게 다가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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