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은 시요일 시 배달 왔습니다.
2주 전이었을 겁니다. 아이들이 출근한 저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기사 보셨어요? “
“아이돌 가수가 죽었대요. 자살이래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요? 너무 충격이에요.”
저 역시 속보로 뜬 기사를 이미 본 상태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끊임없이 남들에게 평가를 받잖아. 우리가 보기엔 멋지고 화려하고 좋아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일 거야. “
“왜 죽었을까요?”
“그건 아무도 알 수가 없지. 그 이유를 표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했으니까.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게 아닐까?”
<걱정 마>
- 박성우
걱정 마, 걱정 말고 힘내
니가 그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니가 지금 밝은 곳에 있다는 증거이니까
+ 시始 시詩 한 이야기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항상 밝음을 강조합니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분위기를 살리고 적절하게 개그를 칠 수 있는 친구들은 항상 인기가 많습니다. 재밌으니까요. 하지만 그들 역시 종종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린 매우 당황하며 묻곤 합니다.
"평소 같지 않게 왜 그래?"
"네가 진지하니까 이상하다. 빨리 예전으로 돌아와."
이 말속엔 당연히 그들에 대한 걱정도 담겨있지만, 빨리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길, 전처럼 모두를 웃겨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담겨있죠. 저는 때때로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지면 두렵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된 거야.‘라고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너는 왜 나쁜 쪽으로 생각해?’라며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되죠. 그늘지고 어두운 마음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알 수 없는 흐름들에 떠밀려, 서로에게 파이팅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살아오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캄캄한 어둠이고 그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첫 아이를 만났을 때이고, 두 번째는 남편과 바닥까지 내려가서 싸웠을 때입니다. 두 번 다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진 어둠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합니다.
사랑은 항상 밝고 충만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어요. 어두운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좋게만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밝은 건 좋은 것이고 어두운 건 나쁜 것이라고 정해둔 게 문제였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이 생겨날 때면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애써 감추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빛과 어둠은 항상 공존합니다. 내가 가진 어둠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남들의 인정이나 평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 자신을 돌볼 수 있습니다.
[ 사람은 살아가면서 환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고 빛나지 않은 순간도 있다. 지금이, 현재가 조금 힘이 든다면 환하게 빛나는 순간을 위해 충전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
라고 쓴 한 친구의 생각을 들여다보니, 아이들은 어둠을 다룰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어둠으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친구네요.
[ 잘 되면 잘 된 거고 안 되면 그냥 해 본거지 :D ]
초연하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마음이네요. 정말 배우고 싶은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