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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Jul 23. 2023

눈에 담거나 마음에 담거나 누군가에게 전하거나

뮤즈그레인 <걸어가>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서둘러 준비한 덕분에 일찍 도착했고 가장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공연이 시작됐다. 사실 공연 시간이 앞당겨졌는데 우연히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과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작은 우연에 기뻐하며 공연을 즐겼다.  


  청연루의 그늘과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 저물어가는 햇빛과 함께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선물 같았다. 악기 위를 오가는 손놀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로 어우러진 음악 속에 각자가 내는 선율이 들려왔다. 한옥마을을 오고 가는 사람들은 홀린 듯 멈춰 서서 노래를 들었고 리듬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뒤늦게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무엇보다 뮤지션들이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기운이 관객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함께 선물 같은 순간을 즐겼다.


  “돌멩아 카메라 말고 눈으로 보면 더 좋아.”

  “응! 그런데 동영상으로 담아 놓고 싶어.”

  둘째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눈은 앞을 바라보며 공연을 녹화하기 바빴다. 박수도 치며 이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놔두기로 했다.


  공연의 주인공은 2006년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뮤즈그레인이다. 다른 팀들과 다르게 재즈라는 장르를 선택했고 뛰어난 연주 실력과 가창력을 선보였다. 대학가요제 무대를 보고 있던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뮤즈그레인이 대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어떠한 상도 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며 사람들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들이 2023년인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어오고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우리가 꽃이라면 슬피 피고 있는 중인지, 소란하게 지고 있는 순간인지, 지고 나면 그 다음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지금을 고민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꽃이 피고 지면 멈춰서> 들려 드릴게요.”

  계속해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음악을 계속 만드는 마음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요’가 목적이 아니라 ‘내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가 먼저였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좋아서 하는 일은 이제 누군가의 마음에 와닿게 된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용기를 내기도 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 마지막 곡 들었을 때 울컥했어.”

  “왜? 공연이 끝나서 아쉬웠어?”

  “1학년 때 받아쓰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거든. 그런데 노래 가사에서 ‘울어도 된다’고  하니까, 갑자기 그때가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

  “우리 아들 그때 엄청 힘들어했잖아. 받아쓰기 때문에 못 살겠다고 흑흑 울고. 크크.”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아이는 부끄러운 듯 소리를 높였다. 아이의 인생에서 1학년의 받아쓰기만큼 어려운 일들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때론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털고 일어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거나 빨리 달리라고 채근하지 않고 그저 위로를 건네면 될 것이다. 음악이 주는 위로를 아이가 알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여겼다.


  뮤즈그레인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계속 해나갈거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좋아서 만든 음악을 누군가는 또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 자신들의 음악으로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힘, 누군가가 눈에 담고 마음에 담을 그 선물 같은 순간을 전하려는 마음을 생각한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둘째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를 찾는다. 곧이어 아빠를 발견하고 해사하게 웃으며 말한다.

  “아빠! 아빠 보여주려고 내가 동영상 찍어왔어요!”

  좋은걸 보고 들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그 마음도 생각한다.


  나 역시 좋아서 남기는 이야기이다.


  + 뮤즈그레인 <눈부신 밤>

https://youtu.be/n4PB91-X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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