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좋은 기회로 도시 재생과 관련한 강연을 들었다. 서울의 을지로에는 세운 상가라는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있다. 서울 시장들마다 그 공간을 어떻게든 건드려보려고 탐내는 곳이라고 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혹은 정책이 바뀔 때마다, 을지로의 도시 재생 계획은 덩어리 채 움직이기도 하고 잘게 쪼개지기도 했다. 개발이 시작되면서 원래 그곳에서 살고 있던 주민들은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하지만 개발마저 엎어지면서‘공실’ 상태인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게 된다.
이곳에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거의 안정화, 임대료 지원 덕분이었다. 안정적인 거주를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강연자가 을지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틈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라고 했다.
그는 틈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가 꺾이지 않게 테이프로 붙여준 모습이 을지로 같다고 말했다. 을지로라는 공간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게 주거의 안정화라는 테이프를 제공한 것이라고 여겼을까. 혹은 예술이라는 것은 어떤 곳에서든 이어지고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마치 꽃을 피우고 씨를 퍼트리는 일처럼 말이다.
그는 세운상가에 입주하여 작업실을 만들다가 1979년의 벽지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7광구 탐사의 순항을 기원하는 신문 만평이었다.
“그렇게 벽지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만나게 됐죠.예술 작품을 건물에 걸기 위해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들마다 쌓인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거리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모일지 궁금해졌어요.”
그는 동네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해 마당이라는 공간을 재구성했다. 매주 공연을 열고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협업을 제안하는 ‘철의 골목: 도시 음악’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예술가들을 경계하던 주민들도 단절의 벽을 허물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문화를 즐겼다.
공간 예술은 마당을 넘어 거리로 확장되었다. 폐자재가 쌓이고 길고양이들의 오줌 냄새가 가득하던 담벼락을 ‘장인의 화원’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커다란 화분이 놓이고 뿌리를 뻗을 공간이 생겨서였을까. 몇 년간 꽃이 피지 않던 라일락은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아무도 심지 않았지만 포도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도 했다. 그렇게 라일락과 포도나무와 코스모스의 이야기가 거리에 모였다. 고양이도 함께.
공간과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강연자는 말했다.
“가로수는 도로 위의 좁은 땅에 필요에 의해서 심어졌어요. 큰 나무를 군데군데 심는 것도 필요하죠. 하지만 이제는 숲길을 만들고 연결을 짓는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길에 핀 작은 민들레도 들꽃도 억새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사람도 함께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공간을 바라본다. 다양한 우리들이 만나 각자의 자리를 존중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