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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Mar 05. 2023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땐 그냥 걸어보아요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작은 동산에 혼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집중해서 산을 오르면 2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이었죠. 그 산은 초등학교 시절 해마다 찾아간 소풍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아, 또 배산이야. “라는 볼멘소리와 함께 친구들 모두가 산에 오르고 나면 나무 사이사이를 학생들이 빼곡히 메꾸었습니다. 우리의 무게에 짓눌려 산이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그 작은 산에 혼자 올라갔습니다. 항상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있었고 앞사람을 뒤쫓아 올라다니던 산이었는데 혼자여도 괜찮더라구요. 게다가 올라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예상대로 20분 만에  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바람은 시원했고 산은 싱그러웠죠. 혼자 올라왔다는 뿌듯함을 만끽하며 우리 집이 어디쯤 있을지를 눈으로 찾았습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은 조그마했고 저는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졌습니다. 묘했죠.

  쉽게 올라갔으니 내려오는 것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내려가면 되니까요. 비슷한 모습의 나무들 사이에서 저는 점점 엉뚱한 길로 들어섰고 마침내 이곳이 어디쯤인지,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길을 잃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작고 익숙했던 그 산이 온 힘을 다해 저를 압박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는 저를 한없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고 길은 어느 쪽이 맞는지 답을 알 수가 없었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그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어쨌든 길은 이어지니 땅으로 내려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빠르게 내려오는 것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죠. 길을 알려주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도, 누군가의 봉분도, 청설모도 도토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 스스로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영영 갇혀버릴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여 눈이 가려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의 이쪽 입구에서 출발했는데 제가 내려온 곳은 산 저쪽 아래의 체육공원이었죠. 산 아래 땅을 디디는 순간, 위에서 내려다보던 조그만 세상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익숙한 길을 만났고 다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수차례 뒤를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점을 향해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길을 잘 아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는다면 더 쉽죠. 때때로 나를 돕는 누군가의 존재를 잊고 혼자 해냈다는 자만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수많은 갈림길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무게 중심은 앞으로 쏠리는데, 그 흐름대로 끌려가다 보면 가파른 경사에 넘어지기도 쉽습니다.  

  중심을 잡는 게 쉽지 않다고 여깁니다.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들을 때 설명이 많아서 지루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상황 설명도 없이 내 이야기만 한다고 짚어줍니다.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남이 읽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가장 큰 불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 불안은 어디에서든 티가 나기 마련이라 이야기는 금세 생기를 잃어버립니다. ‘이 말‘을 해야지라고 시작했던 글은 ’저 말‘을 하면서 끝나기도 합니다.

  인정해야겠어요. 저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확신 없이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게  네 스타일이라고 변명한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야지. “

  라고 누군가는 저를 답답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번에도 저는 당당하게 앞을 보며 걷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뒤를 자꾸 돌아보며* 걸어 나가겠죠.


  다만 뒤를 돌아보는 그 눈길에 다른 풍경도 담아가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잘못된 걸음에는 반성을, 비틀비틀한 걸음과 함께 지나온 언덕에는 뿌듯함을 느끼며 다시 앞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 보폭에 맞추어 함께 걸어가는 누군가의 발자국도 잊지 않고 돌아보고 싶습니다.   


* 아이유 <Unlucky> 가사 중에서_  난 나의 보폭으로 갈게, 불안해 돌아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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