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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Jun 15. 2024

스승의 날이 빨간 날이면 좋겠다

20240514. 6학년

  올해 스승의 날은 부처님 오신 날과 겹치면서 자연스레 휴일이 되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진정한 스승의 날은 선생님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라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스승의 날은 계기교육을 하기도 어렵고, 자축하기도 민망하고,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아이들이 내민 마이쮸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 순간도 불편하다. 5월 15일이 빨간 날이어서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날이 되는 게 솔직히 더 편하다.

 

  휴일도 겹친 김에 '올해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승의 날을 보내야지.'라며 괜히 결연해졌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그래도 편지는 써야지.'라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고마운 사람을 떠올리고 편지를 쓴다는 건, 당연하게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당연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 같다.

  "13년 동안 살아오면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을 거야.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고마운 선생님께 편지를 써 보자."

  "선생님한테 쓰면 안 돼요?"

  "선생님은 3개월밖에 안 가르쳤잖아. 아직 너희들 가르칠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지나간 선생님들께 안부를 물어보자."

  축구를 좋아하는 준희가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축구 교실 선생님께 써도 돼요?"

  아이들은 준희의 말에 힌트를 얻은 듯이 너도나도 말했다.

  "1학년 때 선생님도 돼요?"

  "체육 선생님은요?"

  "식생활관 선생님께 써도 되죠? 밥이 너무 맛있어서 감사하거든요."

  "작년 선생님께 쓰고 싶은데 지금 우리 학교에 안 계세요. 어떻게 전달해요?"

  아이들은 주는 기쁨을 이미 알고 있는 걸까. 편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걱정부터 앞선다.

  "걱정 마, 선생님이 우체국에 가서 다른 학교로 편지를 보내면 돼. 그러니 지금 떠오른 그 선생님께 글로 고마움을 전해 봐."

  

  선생님 덕분에 학교에서 버틸 수 있었다는 민서의 편지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을까. 한 문장에 채 담기지 못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오고 갔을지도 모른다. 민서의 편지를 봉투에 담아 다른 학교에 계신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민서의 편지를 받은 선생님께서 답장과 함께 연락을 주셨다.

[ 민서 편지를 받아 들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참을 서 있었네요.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데 부족한 나를 누군가는 이렇게 따뜻한 기억으로 가지고 있구나... 좀 더 겸손하게 감사하며 아이들과 잘 지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이쁜 마음을 지나치지 않고 제 손에 전달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신 샘의 마음에 또 한 번 감동이 밀려오네요. ]


  스승이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자기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스승 자신을 의미하는 것일까. 배우고자 하는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배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을 돕는 존재라는 건 확실하다.

  나는 나 스스로도 돕지 못하는데 스승은 무슨... 스승의 날에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괜히 결연해졌다가, 스승의 날이니까 편지는 써야지, 라며 왔다 갔다 했던 마음들이 떠오른다. 이래서 스승의 날이 여전히 어려운가 보다.


*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스승의날

#빨간날

#편지

#좋아해서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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