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아이를 낳은 지 사흘이 채 안 된 엄마에게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의 눈썹 사이에는 팔자 모양의 근육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할머니의 말을 가로채며 대꾸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딱 한 명만 낳겠다고 했잖아요.”
가난한 집에서 다섯 남매의 장남으로 자란 아빠는 결혼할 때부터 선언했다. 아이는 무조건 딱 하나만 낳겠다고. 안타깝게도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고 할머니는 아들을 원했다.
능력 좋은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사 개월 만에 둘째를 임신했다. 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옥편을 뒤져가며 좋은 한자를 찾아 이름을 지어오셨다. 세상을 빛내라는 의미로 ‘빛날 홍’을 넣어서.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가 이름 지어주는 걸 거부하셨다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홍’이라는 글자가 내 이름에 들어갔다면 온갖 별명으로 고통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내 동생은 ‘홍합’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장 떠오르는 단어만 해도 ‘홍시’ ‘홍길동’ ‘홍당무’ ‘홍두깨’ 그리고 ‘홍익인간’. 단군 신화를 배우는 그 순간부터 나는 홍익인간으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가 아들을 낳기 전까지 나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엄마는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 너는 할아버지 집 대문이 보이는 순간부터 울어 재끼기 시작해서 대문을 나설 때까지 울었어. 네 할머니가 징글징글하다고 빨리 가부러라고 성내고 난리였다야.”
“할아버지가 내 이름도 안 지어줬다며. 아들 손주만 예뻐하니까 서러워서 그랬나 보지.”
내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하자 엄마는 답했다.
“할아버지는 너를 예뻐했어. 표현이 서툴러서 그러셨지.”
추석 연휴였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다섯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아 여덟 명의 어린아이가 모였다. 우리는 마당에서 술래잡기, 돌멩이로 그림 그리기, 흙에 물 부어서 커피 만들기 같은 온갖 놀이를 만들어 내며 놀았다. 할아버지는 논에 다녀왔는지 기다란 장화를 툭툭 벗고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말하셨다.
“느그들 이리 뽀짝 와봐야. (너희들 이리 가까이 와 봐라.)”
우리는 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이 짝으로 나이순대로 안거 봐라. (이쪽으로 나이순대로 앉아 봐라.)”
나는 동생들을 줄 맞춰 세우고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사촌 동생들은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눈치껏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셨는데 그 눈빛에는 기특함과 대견함이 살풋 묻어있었다. 할아버지는 꼬불쳐진 지폐를 한 장 한 장 펼치고는 내게 쥐여주며 말하셨다.
“우리 첫 손주, 네가 잘하니까 동생들이 다 너 맹키로 잘하나 보다. 항상 잘해야 쓴다.”
뒤이어 내 옆에 앉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셨다.
“우리 장손! 장손이 잘해야 집안이 든든하게 자리 잡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야 쓴다.”
뒤를 이어 사촌 동생들에게도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며 용돈을 주셨다. 할아버지 입꼬리는 근엄함과 기쁨 사이를 묘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머무는 동안 매일매일 경운기를 태워주셨다. 탈탈탈 시동을 걸고 비포장도로를 덜컹덜컹 엉덩이를 찧어가며 달렸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 경운기를 타면 사방에서 바람이 몰려와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다. 우리는 그것마저 재밌어서 까르륵까르륵 웃어대기 바빴다. 논둑 양옆이 코스모스로 가득했다. 경운기에 앉아 손을 뻗으면 코스모스가 닿을 듯 말 듯했다.
“할아버지 코스모스가 엄청 많이 피었어요! 정말 예뻐요.”
할아버지는 탈탈거리던 경운기를 잠시 멈춰 세우더니 무심하게 뛰어내렸다. 코스모스를 한 움큼 손으로 휘어잡아 꺾으셨는데, 줄기가 냉면 가닥처럼 질기게 따라 올라왔다. 할아버지는 기어코 끊어내고 말겠다는 듯이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실랑이했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꽃 안 꺾어주셔도 돼요.”
할아버지는 나를 잠시 돌아보시더니 이내 코스모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입을 크게 벌려 어금니로 줄기를 끊어냈다. 한 움큼 또 한 움큼, 또 한 움큼, 그렇게 양팔 가득 꽃다발을 만들어 내게 안겨주셨다. 그러곤 탈탈탈, 다시 경운기를 모셨다.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코스모스에 파묻혀 있었다. 꽃잎을 만지고 향기를 맡으며 코스모스와 함께 바람에 살랑거렸다.
할아버지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내 품에 안긴 코스모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이거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셨어!”
엄마는 할아버지 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할아버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연신 장화만 털어댔다.
“코스모스가 엄청 질겨서 안 꺾였는데 할아버지가 이로 끊어주셨어!”
엄마는 아까보다 눈이 더 댕그래져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야가 꽃이 이삐다카니까 끊어줬제! (아이가 꽃이 이쁘다고 하니까 끊어준 거지!)”
할아버지는 괜히 성을 내고는 들어가 버렸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가 손에 쥐여 준 용돈도 좋았지만, 코스모스로 만든 한 아름의 꽃다발이 더 좋았다.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타는 것도 좋았지만, 자주 뒤를 돌아보며 우리를 살피던 할아버지의 눈길이 더 좋았다. 아들 아니라고 이름도 안 지어줘서 살짝 삐칠뻔했지만, 매년 가을마다 기분이 좋아지니 이름쯤이야. (게다가 홍익인간도 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