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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Jan 05. 2025

프롤로그 '제 소원은 로또 당첨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우리 집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에 살면 소원이 없겠다.”

  엄마는 말했다.


  나도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이 소원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엔 폭풍같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남동생과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쫓겨난 내가 있었다. 각자의 존재만으로도 기분이 나빴던 그때, 좁은 집에서 사생활이 보장되는 유일한 공간은 화장실이었다. 정확하게는 화장실에 있는 시간.


  동생은 한번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별거 없는 몸뚱이를 어찌나 열심히 씻어대는지 샤워만 삼십분 넘게 했다.

  “아 쫌 나오라고! 배 아파 죽겠다고!”

  나는 화장실 문에 매달려 소리를 질렀다. 악을 쓰며 높아진 소리가 ‘제발 부탁이니까 나와주겠니?’라는 애원으로 바뀔 때쯤 동생은 문을 열었다. 샤워기로 물을 어찌나 틀어댔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찬 화장실에 허겁지겁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자 수증기에 휩싸인 화장실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왔다.

  “야! 진짜 너는 콩이가 똥 싼 곳에 똥도 안 치우고 샤워하고 싶냐! 똥을 치우던가! 너 때문에 똥이 죽이 됐잖아! 야아아악!”

  진심으로 그때 나의 소원은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이었다. 아니면 저 동생 놈을 어디에다가 팔아버리던가.


  동생도 나도 각자의 집에 살고 있는 지금, 엄마는 이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 왜 굳이 새 아파트에 가려고 그래? 가깝고 적당한 데로 가격 맞춰서 가면 안 돼?”

  “엄마도 좋은 집에 살아보고 싶어 그런다. 이 기집애야.”

  어릴 적 우리 집은 무던히도 이사를 다녔다. 2년이라는 전세 기간에 맞추어 집을 옮기거나 2년도 못 채우고 쫓겨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유는 나와 동생 때문이었다.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시끄럽고 울고 벽지를 더럽히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게 포항에서 서울을 거쳐 익산으로 오기까지 아홉 번의 이사를 치렀다. 엄마가 열 번째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번 이사는 분명 엄마의 욕심이지만, 응원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엄마와 함께 모델 하우스를 찾아갔다. 대출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 작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라면 감당할 만한 가격이었다. 난생처음 모델 하우스에 가본 우리 모녀는 현관 입구에 서서 고민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나?”

  엄마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내가 답했다.

  “구경하라고 가짜로 만들어 놓은 집이니까 그냥 신고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남의 집인데 어떻게 신발을 신고 들어가, 벗고 들어가자.”

  엄마는 쪼르르 신발을 벗고 들어가 버렸다. 비행기 타려면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루머를 몸소 실천하는 느낌이었지만, 나 역시 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모델 하우스에 들어갔다.


  “부엌 넓은 것 봐. 싱크대가 이 정도는 돼야지.”

  엄마는 아일랜드 식탁을 한번 쓸어보고는 첫눈에 반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서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화장실이 두 개야.”

  “24평인데 화장실이 두 개라고?”

  “세상에 여기 너무 좋다.”

  누가 하는 말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엄마와 나는 그 집에 폭 빠져버렸다.

  “엄마 여기 계약하자.”

  매물 보러 간 당일에 계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남편의 말은 저 멀리 메아리 친 지 오래다. 아니 메아리는 무슨, 음소거 버튼이 눌린 지 한참이다.


  그때 사무실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누가 입주하실 예정이세요?”

  “저희 엄마요.”

  “어머님은 조건이 안 되세요. 24평은 자격 조건이 청년이거나 신혼부부여야 해요. 32평도 정말 잘 나왔어요. 한번 보세요.”

  “보증금이 얼마예요?”

  액수를 들은 엄마는 눈이 댕그래지더니 내 팔을 찰싹 때렸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엄마, 팸플릿이라도 받아 가자.”

  “됐어. 빨리 나가.”

  엄마의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섰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팸플릿을 받아 가도 담보 대출 설명을 들어봐도 이 집을 살 수 없다는걸.


  그 순간 내가 품은 소원은 로또 당첨이었다.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이런 게으른 소원을 품는 게 헛되고 부질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마치 청약 통장도 없으면서 청약에는 당첨되고 싶고, 집을 살 때는 집값이 떨어지면 좋겠지만 내가 팔 때는 집값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이토록 게으르고 무용한 내 소원을 들여다볼 때마다 괜히 마음 한쪽이 쿡쿡 찔려온다. ‘나는 아무래도 집으로 돈을 벌고 싶다.’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 이후 새집에 대한 욕망을 빠르게 단념했다. ‘우리 집’엔 여전히 좁은 싱크대와 낡은 수납장이 세월을 머금고 함께 늙어가고 있다. 조금이라도 넓게 만들어 보려고 아빠가 덧대어 준 나무 상판이 있고, 때가 타고 빛바랜 흔적을 가려보려고 내가 붙인 하얀 시트지가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리 높여 다투고 온 힘을 다해 미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내 어정쩡한 화해를 하기도, 서로를 끌어안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랐고 살았고 몇몇 존재들을 떠나보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은 금방 낡아버리고 허물어져 버린다고 했다. 살아간다는 게 만들어 내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산다는 게 뭘까. 집에서 산다, 집을 산다, 말장난 같은 단어들을 괜히 굴려보다가.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래서 내 소원은,

  지구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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