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포항시
어릴 적 엄마는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와 결혼하기 전엔 은행원이었다고 했는데, 집안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엄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잘 그려지지 않는다. 엄마는 돈을 정말 빨리 셌다. 지폐를 반절 정도 뒤로 뒤집어 엄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엄마의 효율적인 손놀림에 따라 지폐는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뱅글뱅글 회전하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이 멋있어서 몇 장 안 되는 꼬불쳐진 용돈과 돈 크기에 맞춰 자른 종이를 뭉쳐 쥐고, 침을 발라가며 연신 따라 해보기도 했다. 일하는 엄마는 분명 멋있었을 거다.
나와 동생이 막 태어났을 때, 우리 가족은 주택에 세를 얻어 살았다. 집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보면 집주인은 하나같이 우리를 반기지 않았다.
“아유, 애가 둘이나 있네.”
아이 둘을 데리고 세 얻기에 거듭 실패한 엄마는 동생은 다른 집에 맡겨두고 나만 데리고 집을 보러 다녔다. 이삿날이 되면 집주인은 아이가 둘이라는 사실을 알고 집세를 올리거나 당장 나가라고 하기도 했다.
“전세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그건 애가 하나였을 때 이야기고! 애가 둘씩이나 있으면 시끄러워서 못 살아. 얼른 방 빼요.”
그도 그럴 것이 나와 동생은 화분에 있는 꽃들을 죄다 꺾어놓기도 했고 마당에 있는 많은 것들을 망가트렸다. 동생은 말이 안 나와서 울었고 나는 말을 잘 못해서 울었다. 조용히 사고를 쳤고 시끄럽게 울었다. 이사를 해야 할 때마다 엄마는 분통을 터트렸다.
“집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어떻게 사나!”
사실 엄마는 항상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는 동안, 엄마는 우리 집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벌었다.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손에는 거의 매일 일감이 매달려 있었다. 딱딱한 생밤을 물에 불려 껍질을 하나하나 칼로 벗겨 내기도 했고, 색깔이 다른 긴 전선 다발에 코드를 물려 굵은 몽둥이 같은 케이블을 만들기도 했다. 인형 눈은 아니지만 인형 코를 만들었으며 넥타이 시접을 손보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기계가 짧은 시간 안에 처리했을 일을 그 당시엔 사람인 엄마가 하고 있었다.
한 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엄마 손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엄마, 이거 만들면 얼마씩 받아?”
“한 개에 삼십 원.”
“그럼, 천 원 벌려면….”
하나둘 손가락을 꼽아보는 내게 엄마가 말했다.
“삼십 개 넘게 만들어야지.”
“흐익! 삼십 개? 엄마, 나도 같이 할래!”
“안돼!”
엄마는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며 전선을 그러모았다.
“너는 이런 거 손도 대지 마! 뭐 좋다고 이런 걸 하려고 그래. 책 읽고 공부해.”
“엄마 혼자 하면 오래 걸리니까 도와주려고 그러지.”
“책 읽고 공부해서 이런 일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란 나는 삐죽거리며 옆으로 물러섰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엄마가 하는 일은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다. 많이 일하고 적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삼십 원을 받기 위해 전선 다섯 개를 색깔별로 순서에 맞게 모으는 모습이, 전선 코드에 끼우고 짱짱하게 절연 테이프를 휘감는 모습이, 연신 손을 주무르면서도 그 일을 하는 모습이 막연하고 흐릿해 보였다.
흐릿하더라도 꾸준히 모아 온 엄마의 돈은 차곡차곡 은행에 들어가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삼십 원을 벌기 위해 비효율을 마다하지 않은 만큼 우리 가족에게 돈은, 쓰는 게 아니라 모으는 것이었다. “소변볼 때는 화장지 두 칸만 써라.” “머리 감을 때는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세 바가지만 써라.” “불 끄고 다녀야지.” “다 썼으면 전기 코드 뽑고 다녀라.” 그 모든 말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우리는 처음으로 사글세나 전세가 아닌 우리 집에서 살게 됐다. (엄마가 야무지게 들어놓은 청약 통장의 힘이 컸다. *청약 통장: 아파트 분양 자격을 얻기 위해 가입하는 통장)
우리 집을 처음 봤을 때, 하얀 페인트로 깔끔하게 칠해진 커다란 건물에 반해버렸다. 엄마 아빠는 계약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갔고 나와 동생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앞으로 동네 친구들이 될 아이들과 어색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매캐한 냄새가 스멀스멀 밀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 한쪽 구석이 까만 연기로 물들고 있었다. 눈앞에 불똥이 날아다니고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 아빠는 황급히 우리를 찾아 달려 나왔다.
“엄마, 우리 아파트에 불 난 거야?”
“우리 집이 아니라 근처 공장에서 불이 났대. 금방 끌 수 있을 거야.”
“불이 안 꺼져서 우리 집으로 번지면 어떡해?”
엄마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엄마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아빠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보, 우리 얼마나 부자가 되려고 계약하는 날 불이 나지?”
엄마는 동생을 업고, 아빠는 나를 업은 채 불안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부랴부랴 뛰어다녔다.
다행히 불은 꺼졌고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막연하고 흐릿한 소망이 겹겹이 쌓여 선명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희미하지만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힘, 상상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집에 있는 사이를 풍요롭게 하는 방법
- 가족의 소망을 응원하기
- 지금은 희미하더라도 선명해지는 순간을 기대하기
(함께 그려나갈 수 있다면 더 행복해져요)
+ 주의 사항: 너무 과하면 다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집안의 전기 코드를 죄다 뽑고 다녔다가, 집 친구(남편)랑 (심하게) 싸울 뻔했어요. 지금은 전원 차단 기능이 있는 멀티탭을 사용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