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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Dec 18. 2022

자기 앞의 생: 소중한 건 언제나 두려움이니까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그 개 때문에 한 가지 불상사가 일어났다. 나는 그 개를 끔찍이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녀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다.

- <자기 앞의 생> 모모의 이야기


  아홉 살 모모는 푸들 한 마리를 훔친다. 그리고 그 개에게 쉬페르(*최고라는 뜻)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다른 아이들은 장난감이 필요해서 쉬페르를 좋아했지만 모모는 달랐다. 쉬페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부잣집 귀부인에게 돈을 받고 넘겨버린 것이다. 모모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도 행복해한다. 돈은 하수구에 처넣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온다.

  두려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존재가 자신으로 인해 불행해질까 봐. 결국 모모는 스스로 행복을 깨버리고 만다.



  내게도 모모와 같은 순간이 있었다. 스무 살이었다. 3학년 선배였던 그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꽤 독특한 브레이크 댄스로 눈길을 끌었고 꽤 그럴듯한 성대모사로 주변 사람들을 항상 웃게 만들었다. 게다가 제법 괜찮은 노래 실력으로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자주 내게 장난스러운 문자를 보냈다.

[뭐해?]

[나는 니 생각]

[뻥이지 인마]

[지금 간다. 나와.]

[진짜 나온 거 아니지? 장난인데 ㅋㅋ]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문자들을 주고받으며 나는 꽤 즐거웠다. 봄과 여름 사이의 말간 밤, 그는 내게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오라는 말에 진짜 나왔냐'고 와하하 웃어대며 놀려댔고, 이 밤에 나왔으니 '우리는 이제부터 사귀어야 해'라고 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서로를 놀려가며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내게 그의 자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반면에 그에게서 나의 자리는 조금씩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불안했다. 소중한 것이 생기면서 함께 만들어지는 불안이었다. 이 불안이 진짜일 것 같아 두려웠고 그를 잃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가 나를 떠나는 상상을 반복하다가 결국 내가 먼저 그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끝이 났다. 주고받는 사랑에 서로가 미숙해서였을까.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헤어지는 것이 진심인지 불안인지 두려움인지, 각자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미묘한 시작을 한 것처럼 끝도 미묘했다.



  주고받는 사랑은 매우 어렵다. 현실적이어서 때때로 더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러니까 사랑이지 않을까. 예쁜 것만 쥐여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앞의 생>의 모모는 사랑을 배우기 시작한다.  부모 없이 다른 이의 손에서 자란 모모는 만나본적도  없는 엄마에 대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는다.

'나는 내 엄마가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여자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엄마를 만나기만 했더라면 무조건 사랑했을 것이다.'

그저 존재하기만 한다면 엄마가 창녀든 범죄자든 약쟁이든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니,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며 매우 강력하지만 일방적인 사랑.


  반면, 모모를 찾아온 친부는 이야기한다.

"저는 아랍인 아들을 원합니다! 유태인 아들은 필요 없어요!"

"그래요. 저 애는 아랍인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약간 유태인 애가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아들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세례를 받았다면서요!"

부모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는 모모의 사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아들은 아랍인이어야 해!라는 조건적인 사랑으로 돌아온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모모의 아빠는 어린애처럼 떼를 쓰고 징징거렸다.


  로자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모모는 사랑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던 로자 아주머니는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생에 집착을 한다. 애초에 가진 것이 없던 모모는 생을 포기하려는 듯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주머니의 생에 대한 집착은 모모를 살게끔 만들었고 모모의 편견 없는 태도는 아주머니가 살아갈 힘이 된다. 유태인이든 창녀든 나이를 먹고 병이 들고 외모가 무너지는 것과 상관없이 모모는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해간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었다.


  어쩌면 소중함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사랑이 아니라 비겁함에 가깝지 않을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를 위한 변명이고 책임을 미루기 위해 도망치면서 남기는 말인지도 모른다.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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