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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Jan 21. 2023

나는 진정한 열 살: 엄마 때문에 못 해!

<나는 진정한 열 살> 배지영


  겨울 방학이 시작했습니다.

  “애들아 방학 동안 하루가 길잖아. 같이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보자.”

  “매일매일 게임하면 안 돼요?”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건 안돼. 책도 읽고 보드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했으면 좋겠는데. 아! 우리 이번 방학 동안 롤러 스케이트장도 꾸준히 다녀볼까?”

  “좋아요!”

하고 싶은 게 많은 엄마는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의욕적입니다. 덧셈과 뺄셈을 연습할 수 있도록 하루에 3쪽씩 문제집을 풀기로 결정했습니다. 숙제가 다 끝나면 게임을 하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도 반영되었죠. 서점에 가서 함께 문제집을 골랐습니다. 처음에 의욕적이었던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숙제를 하기 싫어합니다.  

  “으아아아... 하기 싫다.”

  “약속했으니까 해야지. 하기 싫어, 하기 싫어, 하면 더 하기 싫은 거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집중해 봐”

  “7 빼기 2는 음... 5! 귀찮다.”

  “원래 공부는 하기 싫고 귀찮은 거야. 그걸 참고 이겨내야지”   

 

  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불안해졌습니다. 그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나는 진정한 열 살>의 주인공 지민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때문에 못 해.”

아홉 살에 수영을 배우다가 그만둔 지민이는 자신이 수영을 못하는 이유가 엄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달래 가며 끝까지 수영을 배우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탓하죠. 함께 수영을 시작했던 태환이는 자유형에 배영까지 마스터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과 비교하니 질투도 납니다. 지민이의 생각을 읽는데 어린 시절 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과외 안 시켜줘서 그래!”  

날이 잔뜩 선 말을 엄마에게 모질게 내뱉었습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친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서울대 나온 우리 학교 선배 있잖아. 과외해준다는데 너도 같이 할래?”  

  “얼마인데?”

  “원래 50만 원인데 우리 둘이 같이 하면 1인당 30만 원으로 해준대.”

솔깃했습니다. 마침 수학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그나마 자신 있고 좋아했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갈수록 어렵고 버거웠습니다. 커다란 벽이 저를 가로막고 있는데 그 벽을 숟가락으로 뚫고 있는 것 같았죠. 시간을 쏟아부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지듯이 저는 그 과외를 받기만 하면 무조건 성적이 오를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벽을 부숴버릴 수 있는 포크레인을 얻을 것만 같았죠.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친구가 과외를 할 거래. 나도 시켜주면 안 돼?”

  “얼마인데?”

  “원래 50만 원인데 둘이 하면 한 사람에 30만 원이래. 그 언니가 작년에 서울대 간 언니인데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입시도 잘 알고 있고 도움이 많이 될 거래. 딱 여름방학에만 특강으로 해주는 거래”

  “꼭... 과외받아야 하는 거야?”

  “... 딸이 하고 싶다는데 그것도 못해줘?”

 

  친구에게 과외를 같이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시에 엄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피어올랐죠. 수학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도무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는 쌓일 대로 쌓여 가고 해소할 길이 없는 마음은 탓하기 쉬운 상대를 찾았습니다. 엄마였죠.   

 

  사실 좋은 핑곗거리를 만난 겁니다. 수학 성적이 오르지 못했던 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면 제가 정말 못난 사람으로 결정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등급으로 평가받던 성적처럼 저라는 사람 자체가 9등급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죠. 끊임없이 그 사실을 외면하고 고개 돌리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내 성적이 떨어지는 건 나 때문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죠.   

 

  아이였던 시절을 지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불안을 마주합니다.  

  ‘내 아이들도 나를 탓하면 어떡하지?’

<나는 진정한 열 살>의 지민이처럼 내 아이가 나를 탓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내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아이들을 설득합니다. 공부해야 한다고요. 공부는 원래 귀찮고 힘든거지만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요. 그런데 정말 공부는 귀찮고 힘든 걸까요? 제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책 속 지민이의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장 안 해도 괜찮아. 하기 싫으면 그만둬.”  

  저에게는 이렇게 들렸어요.  

  ‘엄마는 너의 속도를 존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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