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어 선생님
올해 처음으로 영어 교과 전담을 맡았다. 뭐든 처음은 어렵다. ‘불안’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는 모든 처음을 힘들어했다.
첫 발령을 받고 아이들에게 처음 서는 순간 “여러분, 안녕”과 “안녕하세요. 여러분”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했고, 은행에서 처음 대출받을 때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울렁거렸다. 첫 아이를 낳을 때는 분만실에서 토할 뻔했고, 그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때는 운전을 하다 차를 세우고 엉엉 울기까지 했다. 모든 처음은 출렁이는 마음과 흔들리는 불안을 품고 출발하는 걸까. 처음을 지나가는 건 매번 어렵고 힘들었다.
10년 이상 담임을 맡다가 처음 전담 교사가 되니, 모든 게 처음이다. 겨울 방학 동안 영어 관련 원격 연수를 3개 들었고 교실 영어책을 구매했다. 신기하게도 유튜브 알고리즘은 영어 관련 영상들로 바뀌었지만,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나의 영어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제일 걱정스러웠던 건 원어민과의 협력 수업! 원어민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내 발음이 구릴까 봐 불안했다. 무엇보다 제일 두려운 건 그런 나를 보고 있을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시간은 잘도 흘러 3월이 되었고 아이들 앞에 ‘영어 선생님’으로 서고야 말았다. 아이들은 나를 탐색하기 위해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Hello everyone. I’m very happy to be your English teacher. This is my first year teaching English class. My name is 쌤, 방긋. In korean way 방긋쌤. Do you understand?”
“…….”
“Let’s have fun and learn English together for this year with me!”
내가 말을 마치자, 아이들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단 한순간도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지 허공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선생님이 하는 말 이해했어요?”
“아니요!”
“그럼, 이제 우리말로 이야기할게요.”
아이들은 그제야 살겠다는 듯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물어본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작년에 몇 반 가르쳤어요?’ ‘우리 형 알아요?’ 등 본격적인 호구조사가 끝나고 나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미국 사람이에요?”
“아니요. 당연히 한국 사람이죠. 지금도 한국말을 더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해요? 미국 사람인 줄 알았어요!”
“매일 연습하고 배우면 돼요(어젯밤부터 너희들이 오기 직전까지 달달달달 외웠기 때문이란다). 작년에 처음 구구단 외울 때 힘들고 어려웠죠?”
아이들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네!”라고 답했다. 이어서 내가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일은 이, 이이 사, 이삼은 육.”
아이들은 어미 새를 만난 아기 새처럼 입을 모아 떼창을 했다.
“이사팔! 이오십!”
‘이구 십팔!’까지 우렁찬 목소리로 2단을 끝낸 아이들은 마치 엔딩 요정이라도 된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왜 하필 2단을 골랐을까…….)
나는 구구단 외울 줄 알면 영어도 할 수 있을 거라며 아이들에게 ‘wonderful’과 ‘excellent’를 감격스럽게 외쳤다.
“여러분도 이제부터 선생님하고 같이 배우면 돼요. 영어를 무서워하지 마요.”
라고 멋있는 척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영어가 무섭다. 원어민 선생님과 co-teaching 하는 시간만 되면 겨드랑이가 흠뻑 젖을 만큼(데오드란트를 하나 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렇게 나는 ‘아는 척’이 아니라 ‘하려는 척’을 다하며 처음을 지나갔다.
공부에 끝이 어딨나.
어른이 되어서도 처음은 어렵고, 배울 건 많은걸. 수많은 쉼표와 마침표를 만들며 멈추지만 않으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