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고 싶은 건 냉장고에 넣어요

살짝 얼려둔 마음이 녹는 순간에 대하여* (*<다정소감> 중에서)

  어머님께서 간장 게장을 해주셨다. 등딱지가 내 손바닥보다 큰 '게' 8마리. 새우를 제외하곤 갑각류를 썩 즐겨 먹지 않는다. 이유는 손질이 너무 귀찮고 생긴 게 조금 무섭기 때문이다. 새우는 그나마 껍질이 얇아 발라먹기가 수월하지만 게는 만만치 않다. 일단 등딱지를 뜯어내는 것부터 난관이다. 인터넷 검색의 도움을 받아 세모 모양의 이름 모를 부분을 들어 올리고 등딱지를 뜯어낸다. 양 옆으로 힘을 주어 벌리면 촉수 같은 것들이 손가락을 나란히 모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아가미란다. 가위로 잘라준다. 떼어낸 등딱지 부분에 모래주머니가 있다는데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는다. 아마 함께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나면 입맛이 사라진다. 다리는 발라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치킨 닭다리는 뜯어먹기 좋게 뼈가 가운데에 있는데 이 놈의 게는 왜 반대란 말인가. 게 8마리 중 3마리를 손질해 먹고 5마리가 남았다. 오늘 내일 모레 3일 안에 먹을 가능성은 영 퍼센트. 냉동실에 보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불길한 상자가 하나 보인다. 시커먼 무언가가 얼려져 있는 저 상자. 뚜껑을 열어보니 성에가 잔뜩 낀 간장 게장이 나를 보며 찡긋한다.

'안녕? 나 여기 있었어! 1년 만에 다시 만나는구나!'

그렇다. 나는 1년 전 꽃게철에도 간장 게장을 받았었다. 그때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게를 손질하고 모래주머니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남은 게장은 냉동실에 들어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쉬이 상하고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은 냉동실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김혼비 작가는 이렇게 썼다.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 (...) 여름 동안 정성껏 얼려 가을에 내보낼 글들이 나의 산문집을 방문해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잘 녹으면 좋겠다.

  냉장고에 무언가를 넣는 것은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때때로 상하기 쉬운 무언가를 냉동실에 넣어 썩어버리지 않게 덮어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는 무엇을 얼리고  무엇을 녹이고 싶은 걸까.

  지금 우리 집에 있는 냉장고는 형님께서 사주셨다. 오빠가 쓰던 금성 냉장고가 아직까지 우리를 따라온 것을 보고 형님께서는 꽤 놀라셨던 것 같다. 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 조용히 주문을 넣으셨고 도착한 냉장고는 크기가 커서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큰 냉장고를 무엇으로 채우지?'라는 고민이 무색하게 많은 것들이 채워지고 얼려지고 보관됐다. 나는 이 감사한 기억을 오래오래 얼리고 싶다. 녹이고 싶은 것은 조심스럽다. 내게서 녹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에게서 녹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녹는점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상하지 않게 계속해서 꽁꽁 얼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마 그 얼음을 언급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내게서도 아직 녹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냉장고가 윙윙 기운차게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보면 꼭 웅얼웅얼 말하는 것 같다. 그 순간 탁, 소리를 멈추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괜히 소름이 돋곤 한다.  가끔 처리하기 곤란한 것을 검정 비닐봉지에 꽁꽁 싸매 냉동실에 얼리곤 했다. 쉬이 썩어 냄새가 날 게 뻔한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 때때로 허겁지겁 얼리는 바람에 처음에는 음식이었던 것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얼리면 성에가 끼고 냉장고 냄새가 베어 못 쓰게 된다. 해동도 마찬가지, 급하게 녹이면 너무 녹다 못해 익어버리기까지 한다.

  너무 오래 얼려있지 않도록, 허겁지겁 되는대로 얼려버리지 않도록, 무리해서 해동하지 않도록 그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일 저녁은 남은 5마리 중 3마리를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