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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Dec 31. 2022

우리, 침대를 따로 쓰는 게 좋겠어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남 이야기를 하는 듯 무심하게 툭.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 다시 되물었습니다.

"각 방을 쓰자는 말이야?"

"아니, 각 방을 쓰자는 게 아니라 침대를 하나 더 사서 너 하나 나 하나 쓰자고. 우린 자는 온도가 너무 안 맞아. 너는 추위를 많이 타고 나는 더위를 많이 타서 너랑 같이 자면 내가 너무 더워. 게다가 내가 뒤척이다 너한테 다리를 턱 올리면 네가 화들짝 놀라는데 그럼 내가 네 반응에 또 놀라서 깨버려. 그래서 너한테 다리 올리지 않게 신경 쓰다가 잠을 설쳐."

"이불을 따로 쓰면 되지. 오빠는 얇은 이불, 나는 두꺼운 이불. 그리고 나한테 다리 턱턱 올려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자."

"그게 잘 안된다니까. 그러지 말고 하나 더 사서 옆에 붙이자."

"부부인데 한 침대를 써야지. 이러다가 나중에는 각 방 쓰자고 하겠네."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는 한 침대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아이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울어댔거든요.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저는 아이의 곁에서, 남편은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잤지요. 아이는 좀 더 커서도 여전히 엄마와 함께 자기를 원했고 설상가상으로 둘째가 태어나면서 저는 아이들과 방바닥을 뒹굴며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5년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사를 하고 아이들의 방을 만들어주면서 저는 비로소 침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침대를 따로 쓰자니요?!


  오랜만에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첫날이었습니다. 나란히 누운 자세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뒤척임도 없이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서로를 신경 쓰느라 몸에 힘을 잔뜩 준 상태로 잠을 잔 것입니다. 당연히 피곤합니다. 잠을 잤는데 제대로 잔 것 같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그냥 원래대로 애들이랑 자는 게 더 편하겠는데?'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안 그래도 퀭한 다크서클이 다크를 넘어서 새까매졌고 그 모습은 마치 판다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같이 자야지'의 압박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꾸역꾸역 함께 잠을 잤습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침대를 따로 쓰자니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부부'의 침대가 가진 의미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부여한 의미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부부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한 이불을 덮지 않으면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팔베개도 해주고 서로의 품을 파고들며 함께 잠을 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생각은 침대의 기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아끼는 표현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지요. 연애를 할 때나 결혼 초기에는 이런 표현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서로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던 시기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했지만 여전히 처음을 그리워하고 그 마음이 지속되길 바란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관계나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기 마련이죠. 남편의 말대로 우리는 온도가 달랐습니다.


  침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침대는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한 가구입니다. 하루의 피로를 잠을 통해 풀어내고 좋은 꿈을 꾸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잠을 자는 것처럼 각자의 침대가 있다면 더 나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 침대 하나 더 사서 옆에 붙이자."

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씁쓸함이 자리 잡는 걸 느꼈습니다. 변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관계를 받아들이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보다 달콤한 잠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겠죠.


저는 제 침대에 전기장판을 깔았습니다. 두꺼운 이불도 덮고 잡니다. 제 취향에 맞게 이불 커버도 바꾸었습니다. 자다가 더우면 이불을 펑- 걷어차도 괜찮습니다. 신경질 내는 사람이 옆에 없거든요. 남편은 얇은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올려 잡니다. 춥냐고 물어보면 딱 좋다고 합니다. 다리를 턱턱 올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바디필로우도 사서 끌어안고 잡니다. 가끔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데굴데굴 남편 옆으로 굴러가 코를 슬며시 잡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묻습니다.

"왜 그래! 나 죽이려고 그래?"

"뭐래. 코 골아서 잠깐 잡았거든."


  부부여도 따로 잘 수 있습니다. 매우 편하고 쾌적합니다.

나중에는 각자의 방에 각각 따로 침대가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서로의 방에 초대를 하여 데이트를 즐기다가 각자의 방으로 안녕, 하는 삶도 꿈꿔 봅니다. 꽤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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