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과정
어릴 적 그러니까 중고딩때도 현모양처를 꿈꿔본 적 없다.
평생 전업주부인 엄마를 보면서 나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다.
경제적 독립은 자존감을 지키는 기본이라 여겼다. 치사하게 남편 눈치 보며 생활비를 타서 쓰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물론 엄마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엄마는 늘 당당했고 야무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삶이 독립적이지 못했음을 자인하듯 애는 엄마가 봐줄 테니 일을 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런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우리 세 자매는 아이를 낳고 딱 90일 출산휴가만 쓰고 바로바로 일터로 복귀했다.
아이가 아기일 때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다가도 지친 육아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내 자신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회사’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남의 주머니 돈 먹기가 어디 호락호락 할까?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나를 찾았다 잃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탈탈 털린 날에는 사무실 건너 편 건물 앞 아이 픽업차량에서 내리는 그녀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저 여자들은 무슨 복이 많아서 집에서 쉴까?’ 행사용품 사러 나간 한낮 쇼핑몰에는 내 또래 여자들이 바글바글 하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혼자 한숨을 짓는다. ‘나도 브런치 먹고 싶다. 평일에.’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그녀들의 일상이 내게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육아휴직’을 한 것이다. 아기일때도 하지 않은 아니 못한 그 육아휴직을 말이다.(왜 했는지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풀어보겠다.) 어쨌거나 ‘휴직’이란 걸 하다니!
나도 드디어 평일에 브런치를 먹을 수 있다.
나도 아이 픽업을 할 수 있다.
나도 한낮에 쇼핑이란 걸 할 수 있다.
나도 아이 간식 챙겨줄 수 있다.
나도 카페에서 몇 시간동안 책을 읽을 수 있다.
내 아이도 더는 나와 함께 나갔다 나와 함께 집에 오지 않아도 된다.
다 해보고 깨닳았다. 내가 부러워 마지않던 브런치나 한낮 쇼핑이나 아이픽업보다 내가 진짜 행복한 순간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안일’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온 집안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청소기를 밀고 아침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한바탕 그 남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하나씩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일, 그 일이 끝나고 나를 위한 커피 한 잔 내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그 순간, 고개를 약 15도 돌려 집 안을 한바퀴 스캔하고 나서야 비로소 승천하는 나의 입꼬리. 매일 반복되는 주부의 오전 일상이 이토록 나에게 안정감을 안겨줄 줄이야.
시계를 보니 10시다. 책을 편다. 되도록이면 핸드폰은 보지 않아야 한다. 자칫 잘못 너튜브를 클릭했다가는 AI가 깔아 놓은 밑밥에 걸리기 십상이다. 한 시간에 60페이지가 목표다. 바인더 정리하고 책 한 시간 읽고 나면 큰 아이 줌 수업이 끝난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재빨리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를 말한다. 한번에 승인이 나면 좋겠지만, 뚱한 표정이 나오면 다시 다른 메뉴를 말해줘야 한다. 보통 두 번 안에 우리 점심 메뉴는 결정된다. 면 아니면 고기, 둘 중 하나면 승인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메인 메뉴가 결정되면 그 뒤 조리법은 나의 영역이다. 끓이거나 비비거나 굽거나 찌거나. 음식은 정성보다 플레이팅(plaiting)이다. 보기 좋게 담아 내면 끝. 다 먹기도 전에 둘째 녀석이 온다. 이 녀석은 좀더 섬세하다. 세심하게 응대해 주지 않으면 나는 무척 피곤해질 것이다.
이렇게 두 녀석과 서너 시간 복작이고 나면 저녁 준비할 시간이다. 두 녀석의 입맛이 다른 덕분에 고기와 생선을 번갈아 준비해야 하지만, 두 녀석이 동시에 원할 때는 두 가지 다 차린다. 괜찮다. 나는 음식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데 손도 빠르다. 내 사전에 “내일 해서 줄게. 오늘은 그냥 먹어”는 없다. 그 뭐 어렵다고. 일 할 때도 이렇게 손이 빨랐나?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아니었다. 살림보다 일을 더 오래 했는데…… 나의 숨겨진 재능이 이제야 발현되는 것일까? 난감하다.
어쨌거나 나는 살림이 적성에 맞다.